2004년 09월 25일
상업적이란 무엇일까?
"정당한 상업"과 "상업적인 지나침" - by 히요 님
내용은 성게 군과 마린블루스에 쏟아지는 부당한 비난을 반박하는 글이었는데, 읽고 나자 본문의 요지 - 그러니까 성게 군과는 아무 상관없는 다른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상업적" 행위를 구사하는 행위주체자의 규모가 커지면 어떻게 될까.
얼마전 여성잡지에서 아토피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모여 아토피 아이들이 먹어도 걱정할 필요 없는 건강 블루베리 파이집을 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리 중증의 아토피 아이도 그 집의 파이는 얼굴이 약간 붉어지는 정도로 끝난다며, 정말 좋은 재료로 정성들여 만들어서 멀리서도 찾아온다는 그 가게. 훈훈한 미담이다.
헌데 나는 그 기사를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왜 그렇게 해서까지 빵을 먹여야 하지?"
더 나아가 생각했다. "왜 밀도 안 나는 한국에서 빵을 먹어야 할까."
개별 행위자 차원에서 맛있는 빵을 만들어 정당한 값에 파는 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아니다. 하지만 덕분에 쌀 소비량이 줄어들고, 농가 부채는 높아진다. 저가의 수입품들 때문에 잡곡 시장은 초토화됐다. 그런 뻔한 얘기를 왜 또 하느냐고?
그건 근본적으로 미국이 밀을 폭탄투하하듯 퍼부었기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었다. 밀을 먹고 큰 아이들은 밀가루 음식을 찾는다. 음식 문화 자체가 미국의 뜻대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덕분에 오늘날 한국은 세계 3위의 밀수입국이다. 한국뿐만이 아니다. 원조물자를 먹고 사는 수많은 제3세계 국가에서 식량 자급률이 나날이 하락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일본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 사람은 한국에서 난 음식을 먹으면 충분했다. 그런데 어느덧 온국민의 식사를 한국에서 나지도 않는 농약밀가루의 피자, 햄버거, 빵이 대체했다. 이 흐름은 점점 더 가속화되고 있다. 아무리 유기농 식단 어쩌고 해도 그것을 하기 위해 투입되는 주부의 노동력을 고려하라. 전업주부가 아닌한, 그리고 전업주부가 점점 줄어드는 한 그것도 수월한 일이 아니다. 서구식 아니 '간편식'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근시도 먹는 것에 따라 더 악화된다. 남태평양의 어느 섬은 밀가루 음식 폭격을 받고 10년 안에 주민 51%가 근시가 되어버렸다. 한국도 온국민의 절반이 근시이듯이 온국민의 절반이 아토피인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문화 다양성을 주장하며 수입 농산물로 인해 80년 물가로 1개당 1천원하던 바나나를 이제는 1천원에 뭉텅이로 먹을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개개인 차원에서 보자면 그건 선(善)이다. 나부터도 멜론을 굉장히 좋아하니까. 하지만 전체로 보면 악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도 없는 문화에 물들어 우리 자신의 것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그것이 좋은 결과를 이뤄냈다면 모르겠는데 남은 것은 악화된 국민 건강뿐이다. 웰빙 통밀빵을 먹으면 되는가? 그 밀은 수입품인데?
발아현미를 젖은 솜 위에 옮겨 얹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실은 캣그라스라는 것 자체부터가 외국의 산물이다. 한국에서는 귀리 씨를 구할 수 없다. 하지만 고양이는 사막에서도 살아있다. 귀리가 나지 않는 곳에서도 수많은 고양이들이 생명을 영위해왔다. 왜 판매하는 캣그라스는 모두 '귀리'인가? 왜 다들 비판없이 그것을 수용하는가? 귀리 없이도 코숏(코리안 숏헤어. 길고양이)들은 수만년간 이 땅 위에서 살아오지 않았는가?
외국의 선진문물을 수입한다는 것은 그것이 국산화가 병행되지 않는한 자칫 '노예에의 길'이 될 수 있다. 이제 한국에서 밀수입을 중단한다면 국민적 데모가 일어날 정도로. 우리는 노예가 되었다. 미국의 원조 프로젝트는 그 당시로 필요했지만 결국 국내의 농업 기반을 파괴했다. 세계 모든 곳에서 원조는 그 나라의 농업자립력을 오히려 더 추락시켜왔다. 토착농민 아무도 원조물자와 가격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농민 자체에 대한 교육과 지원' 등의 그 나라 경제를 살리기에 훨씬 더 나은 방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간의 원조 물자 투하'를 선택한 이유는 자명하다. 이제는 아프리카에서조차 냉대성 작물인 밀로 만든 피자를 먹게 되었다. 그들은 그걸 노리고서 한 것이겠지만. '원조'라는 이름으로 해당국의 농업기반을 파괴시켜 선진국 밀을 수출하는 이 거대한 '상업적 전략' 이라니.
이렇듯 미국과 유럽의 거대한 상업적 의도 하에 문화가 바뀌어져버린 지금, 과연 누구를 비난할 수 있을까. 맥도널드와 코카콜라를 비난하긴 쉽지만 한국인 피잣집 주인, 빵집 주인을 누가 뭐라 할 수 있는가. 이들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끔씩 아득해진다. 최초의 의도에는 분명 히요 님 표현처럼 '다른 가치를 어기고 물의를 일으켰다고 간주될 정도로 도를 넘는 행위'가 있었음에도, 이제는 그런 건 아무 의미가 없을 만큼 공기 속에 녹아버렸으니.
...책은 언제 읽느냐에 따라 감상이 달라진다는 건 정말 맞는 얘기다. 인간인 내가 먹기 위해 책을 집었을 때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던 <소박한 밥상>은, 내가 책임지고 보살펴야 할 부양자(=고양이)들을 먹이기 위해 집어들자 훨씬 재미있는 책으로 다가왔다. 그냥저냥 읽었던 <굶주리는 세계>는 고양이의 먹거리 주권에 관심을 가지고 다시 읽어보자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일반추상론이 구체적 타당성을 가지고 피부로 와닿았던 것이다. 이 아이들은 외국의 파우더와 외국의 사료를 먹을 필요가 전혀 없다. "모든 나라는 자국민을 충분히 부양할 능력이 있다". (...우리나라 정부처럼 있는 능력도 내팽개치려고 하니까 문제지;;) 그건 비단 인간뿐만이 아닐 것이다.
되는대로 갈팡질팡하는 글이지만, 뭐, 가끔은 생각의 흐름대로 휘갈겨보는 것도 좋으려니. (이래서 블로그가 좋군. 후후)
내용은 성게 군과 마린블루스에 쏟아지는 부당한 비난을 반박하는 글이었는데, 읽고 나자 본문의 요지 - 그러니까 성게 군과는 아무 상관없는 다른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상업적" 행위를 구사하는 행위주체자의 규모가 커지면 어떻게 될까.
얼마전 여성잡지에서 아토피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모여 아토피 아이들이 먹어도 걱정할 필요 없는 건강 블루베리 파이집을 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리 중증의 아토피 아이도 그 집의 파이는 얼굴이 약간 붉어지는 정도로 끝난다며, 정말 좋은 재료로 정성들여 만들어서 멀리서도 찾아온다는 그 가게. 훈훈한 미담이다.
헌데 나는 그 기사를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왜 그렇게 해서까지 빵을 먹여야 하지?"
더 나아가 생각했다. "왜 밀도 안 나는 한국에서 빵을 먹어야 할까."
개별 행위자 차원에서 맛있는 빵을 만들어 정당한 값에 파는 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아니다. 하지만 덕분에 쌀 소비량이 줄어들고, 농가 부채는 높아진다. 저가의 수입품들 때문에 잡곡 시장은 초토화됐다. 그런 뻔한 얘기를 왜 또 하느냐고?
그건 근본적으로 미국이 밀을 폭탄투하하듯 퍼부었기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었다. 밀을 먹고 큰 아이들은 밀가루 음식을 찾는다. 음식 문화 자체가 미국의 뜻대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덕분에 오늘날 한국은 세계 3위의 밀수입국이다. 한국뿐만이 아니다. 원조물자를 먹고 사는 수많은 제3세계 국가에서 식량 자급률이 나날이 하락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일본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 사람은 한국에서 난 음식을 먹으면 충분했다. 그런데 어느덧 온국민의 식사를 한국에서 나지도 않는 농약밀가루의 피자, 햄버거, 빵이 대체했다. 이 흐름은 점점 더 가속화되고 있다. 아무리 유기농 식단 어쩌고 해도 그것을 하기 위해 투입되는 주부의 노동력을 고려하라. 전업주부가 아닌한, 그리고 전업주부가 점점 줄어드는 한 그것도 수월한 일이 아니다. 서구식 아니 '간편식'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근시도 먹는 것에 따라 더 악화된다. 남태평양의 어느 섬은 밀가루 음식 폭격을 받고 10년 안에 주민 51%가 근시가 되어버렸다. 한국도 온국민의 절반이 근시이듯이 온국민의 절반이 아토피인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문화 다양성을 주장하며 수입 농산물로 인해 80년 물가로 1개당 1천원하던 바나나를 이제는 1천원에 뭉텅이로 먹을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개개인 차원에서 보자면 그건 선(善)이다. 나부터도 멜론을 굉장히 좋아하니까. 하지만 전체로 보면 악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도 없는 문화에 물들어 우리 자신의 것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그것이 좋은 결과를 이뤄냈다면 모르겠는데 남은 것은 악화된 국민 건강뿐이다. 웰빙 통밀빵을 먹으면 되는가? 그 밀은 수입품인데?
발아현미를 젖은 솜 위에 옮겨 얹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실은 캣그라스라는 것 자체부터가 외국의 산물이다. 한국에서는 귀리 씨를 구할 수 없다. 하지만 고양이는 사막에서도 살아있다. 귀리가 나지 않는 곳에서도 수많은 고양이들이 생명을 영위해왔다. 왜 판매하는 캣그라스는 모두 '귀리'인가? 왜 다들 비판없이 그것을 수용하는가? 귀리 없이도 코숏(코리안 숏헤어. 길고양이)들은 수만년간 이 땅 위에서 살아오지 않았는가?
외국의 선진문물을 수입한다는 것은 그것이 국산화가 병행되지 않는한 자칫 '노예에의 길'이 될 수 있다. 이제 한국에서 밀수입을 중단한다면 국민적 데모가 일어날 정도로. 우리는 노예가 되었다. 미국의 원조 프로젝트는 그 당시로 필요했지만 결국 국내의 농업 기반을 파괴했다. 세계 모든 곳에서 원조는 그 나라의 농업자립력을 오히려 더 추락시켜왔다. 토착농민 아무도 원조물자와 가격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농민 자체에 대한 교육과 지원' 등의 그 나라 경제를 살리기에 훨씬 더 나은 방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간의 원조 물자 투하'를 선택한 이유는 자명하다. 이제는 아프리카에서조차 냉대성 작물인 밀로 만든 피자를 먹게 되었다. 그들은 그걸 노리고서 한 것이겠지만. '원조'라는 이름으로 해당국의 농업기반을 파괴시켜 선진국 밀을 수출하는 이 거대한 '상업적 전략' 이라니.
이렇듯 미국과 유럽의 거대한 상업적 의도 하에 문화가 바뀌어져버린 지금, 과연 누구를 비난할 수 있을까. 맥도널드와 코카콜라를 비난하긴 쉽지만 한국인 피잣집 주인, 빵집 주인을 누가 뭐라 할 수 있는가. 이들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끔씩 아득해진다. 최초의 의도에는 분명 히요 님 표현처럼 '다른 가치를 어기고 물의를 일으켰다고 간주될 정도로 도를 넘는 행위'가 있었음에도, 이제는 그런 건 아무 의미가 없을 만큼 공기 속에 녹아버렸으니.
...책은 언제 읽느냐에 따라 감상이 달라진다는 건 정말 맞는 얘기다. 인간인 내가 먹기 위해 책을 집었을 때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던 <소박한 밥상>은, 내가 책임지고 보살펴야 할 부양자(=고양이)들을 먹이기 위해 집어들자 훨씬 재미있는 책으로 다가왔다. 그냥저냥 읽었던 <굶주리는 세계>는 고양이의 먹거리 주권에 관심을 가지고 다시 읽어보자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일반추상론이 구체적 타당성을 가지고 피부로 와닿았던 것이다. 이 아이들은 외국의 파우더와 외국의 사료를 먹을 필요가 전혀 없다. "모든 나라는 자국민을 충분히 부양할 능력이 있다". (...우리나라 정부처럼 있는 능력도 내팽개치려고 하니까 문제지;;) 그건 비단 인간뿐만이 아닐 것이다.
되는대로 갈팡질팡하는 글이지만, 뭐, 가끔은 생각의 흐름대로 휘갈겨보는 것도 좋으려니. (이래서 블로그가 좋군. 후후)
# by | 2004/09/25 13:28 | 생각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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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a / ...저; 제 이름부터 틀리셨습니다. -_-;;;
글을 좋게 읽어주신 건 감사합니다만 제가 반응하기 어려운 덧글을 달아주셨군요. (솔직히 부담스럽습니다. 뭐라고 답해드려야 할지도 막막하고...) 그냥 다른 분들처럼 평범한 어조의 덧글 정도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상 몇마디 붙이자면... 저 어머니분들은ㅡ그렇게까지 해서 빵을 먹을 필수적인 이유가 있으신 게 아니라, 식재료부터 토종 신토불이를 고수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고른 선택이라고 생각되어서, 별 문제 없다고 생각되는데요...
한국도 수출하는 게 없는 것도 아닌데다가, 모든 나라가 자급자족하는 대외경제만을 형성할 수도 없는 것이고, 음식이나 문화나 모두 교류의 폭이 넓을수록 선택권도 다양해지고 발전하게 되지요. 쇄국정책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상업의 과정에 있어서 정치적 압력이나 비합리적 조약에 당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국내 농민들의 피해같은 건 정부가 적절한 대외무역정책으로 대처했어야 할 문제이지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이 "노예의 길" 이 될 수 있다고 보고 경계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을까요? 문제는 국산화냐 아니냐, 선진 문물을 도입하냐 안하냐에 있는 게 아니라, "각국 정부의 현명한 국내 상황 대처 및 처리"에 있는 거라고 봐서요. 오히려 "상업적 무역은 넓힐" 일이고, 그에 따라 국내 산업을 위한 철저한 대처를 요구해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전 어머니들의 동기나 행동을 문제삼은 것이 아닙니다. 위에도 그분들은 훈훈한 미담이라고 써놨는데요; 그것을 징검다리 삼아 다른 문제를 제기한 것이거든요.제가 설마 그분들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고 쓴 것으로 읽혔습니까?;;; (으음;;)
하지만 제가 트랙백을 보낸 이상은 책임지는 게 마땅한 것인데, 이런 어리광스러운 푸념을 늘어놔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좀 그랬거든요, 기분이...)
히요 님도 좋은 하루 되시고, 즐거운 추석 보내시길 빕니다. ^^
죄송합니다.샐리님
글 잘 읽었습니다.
샐리님이 갈팡질팡이라는 표현으로 마무리지으셨듯이 저도 이런 종류의 문제에선 생각이 갈팡질팡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을거리를 포기하게 된 민족, 과연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답답해집니다. 그럼... 안 되는 농사 네가 지을래? 하면 할 말은 없지만 하나씩하나씩 포기하게 되면 나중에 어떻게 될까 하는. 결국 가장 기본적인 먹을거리가 자급이 안 되면 종속적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언제든 말 안 들으면 밥 끊는다 그럴 수 있으니까). 그리고 생산적인 일들을 하지 않게 되어 가는 우리네 모습들까지 겹쳐서... 이 땅에 살면서 이 땅의 것을 먹지 않는 게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과연 우리가 길게 생각하는 건지... 생각은 많지만 역시나 정리가 안 되네요. 암튼 좋은 생각 잘 읽었습니다. ^^
와주셔서 깊은 감상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종종 들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