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5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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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패러디] Book of Days : chapter 0,1-1(1)
아래 포스트 끄적거리다가 생각이 나서....
써놓은 데까지 올려봅니다. (뒷날은 기약없어요~~… 어차피 2001년에 쓰다 만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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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라자 패러디>
― Book of Days ―
……저 용맹 무비하며 동시에 비할 데 없는 지혜로움을 동시에 갖춘 전사이자 현자인 샌슨 퍼시발마저도 때로는 그의 어린 종자 후치 네드발의 도움을 받았다는 믿을 만한 기록들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이를 신빙성 없는 자료로 생각하곤 하는데, 한낱 평범한 소년에 불과했던 후치 네드발이 세상에 그 이름이라도 전하게 된 것은 오로지 위대한 샌슨 퍼시발이 그를 가엾게 여겨 종자로서 데리고 다녔다는 사실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수많은 옛노래와 가인들의 하프에서 울려퍼졌던 진리를 다시 한번 밝힌다. 가장 현명한 자도 때로는 가장 어리석은 자에게 배울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현명함을 더욱 빛나게 할지언정 그 광휘를 줄어들게 하지는 않는 법이다…….
「품위 있고 고상한 켄턴 시장 말레스 추발렉의 도움으로 출간된, 믿을 수 있는 바이서스의 시민으로서 켄턴 사집관으로 봉사한 현명한 돌로메네 압실링거가 바이서스의 국민들에게 고하는 신비롭고도 가치 있는 이야기」 돌로메네 지음, 770년. 제12권 15쪽.
0. Fanatic South
해질 녘의 석양 빛 아래, 전투는 끝나 있었다.
수없이 널브러진 시체와 갑주와, 그리고 부러진 무기들 사이로 한줄기 바람이 휘감아 돈다.
대충 두어 가지 종류로 구분되는시체들, 갑주들, 그리고 무기들.
아직 죽지 않은 부상병도 아주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의 희미한 경련은 그리 오래지 않아 이내 사그라든다. 그 옆에 꽂힌 반토막 난 헬버드가 그의 묘표 대신이 되어줄 뿐이다.
그 배 주위에는 검붉은 얼룩이 크게 생겨 있다. 그 뻥 뚫린 한복판에는 역시 검붉게 말라붙은 고깃덩이 속으로 까마귀에게 찢어발겨진 누르스름한 지방과 구더기들이 둥지를 튼 희여멀건한 뼈가 보인다.
그런 시체가 한없이 널브러져 있는 이곳,
광기의 남녘──사우스 그레이드 칼피아 호 연안.
그 한복판에 세워진 한 막사로 한 청년이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펄럭.
입구의 천이 들썩이며 내는 소리에, 안에 앉아 있던 중년의 남자가 고개를 든다.
“오셨구려, 퍼시발 공.”
막사 안은 간결했다. 딱딱한 야전침대, 그 앞의 간이 나무 탁자와 의자 몇 개. 샌슨은 그중 한 의자에 앉아 있는 로넨 휴리첼 백작의 맞은편 자리에 대충 걸터앉았다.
“휴우, 땀나는군요.”
“더우면 투구를 벗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
샌슨은 혀를 차며 투구를 벗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런 그의 앞에 로넨이 말없이 물을 따라 내밀어 준다.
“고맙습니다.”
꿀꺽 꿀꺽, 샌슨은 목젖을 울리며 단숨에 들이켰다.
“푸하─, 살 것 같네요.”
샌슨은 머리를 붕붕 휘저으며 온몸으로 상쾌함을 웅변했다. 그런 샌슨을 로넨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 물었다.
“그래, 좀 어떻습니까?”
“음…, 글쎄요, 그 말이 사실이란 건 확실히 알겠더군요.”
“네?”
“그 왜, 대륙 최고의 단위 전투력이란 소리 말입니다.”
로넨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지금은 자신들의 시간으로 돌아간 천공의 3기사의 대장 그레이 휠드런의 간청 및 칼과 자크의 뒷공작이 어우러져 이곳 바이서스의 남부로 파견된 일스 공국의 장미 기사단은, 켄턴의 데스나이트가 사라지고 정지된 시간이 제 흐름을 되찾은 지금에 와서도 이곳 사우스 그레이드에 그대로 주둔해서 샌슨의 지휘 아래 자이펀의 최정예 부대들과 싸우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분명 데스나이트와 싸우기 위해 먼 남쪽으로 달려온 이들 저스티스 기사단은 정작 데스나이트와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여기 묶여 있었다. 도착 후 바로 데스나이트가 사라진 것도 있긴 했지만, 칼이 대체 어떤 정치 수완을 발휘하여 일스 대공의 항의와 반환 요구를 모조리 개소리로 만들고 뻔뻔하게도 바이서스 장수의 지휘 아래서 잠자코 싸우게 만들었는지, 샌슨과 로넨은 그저 입만 쩍 벌릴 뿐이었다.
“저 사람이 그 허허거리던 내 친구 칼이 맞나 싶을 정도라니까요.”
샌슨은 기가 찬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그들이 군말 없이 복종하고 있는 건 지휘관의 역량 덕이 더 큰 것 같은데요, 사령관 각하. 스스로의 능력을 과소 평가할 건 없잖소?”
“일스의 기사단인 그들에게 제가 충성의 대상이 될 수 있겠습니까?”
샌슨은 예전에 로넨의 말을 떠올리며 반문했다.
“그러니까 대단한 거지요.”
“…네?”
갸우뚱한 표정으로 다시 묻는 샌슨을 보며 로넨은 빙그레 웃었다.
“그러니까, 원래라면 충성의 대상은커녕 복종의 대상도 될 수 없는 이국의 장수 말을 그들이 고분고분 듣는 건 순전히 그 장수의 역량이 그만큼 출중하기 때문이란 얘기가 되지 않겠소, 이의의 여지가 없을 만큼.”
면전에서 거한 칭찬을 들은 샌슨의 얼굴이 벌개졌다.
“하하, 아하하하, 민망하군요. 언감생심 오거가… 시끄러! 그 소린 전에도 한 번 써먹었잖아. 흠흠, 글쎄요, 말씀은 감사하지만 고향의 소규모 경비대로 몬스터하고만 싸우던 제게 그런 사랑의 물레방아… 시끄럽다니까! 지휘 능력이 있을 것 같진 않군요. 그 부분은 로넨 씨의 힘이 더 크지 않겠습니까?”
로넨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몬스터라면 말씀마따나 그런 소규모 경비대로 몬스터의 습격을 40번이나 막아낸 그 역량을 인간하고 싸운 것과 비교할 수 없죠.”
“아, 그거 그거. 전에 타이번도 그러던데 40번 싸워 살아남았다는 게 그렇게 신기한 겁니까?”
“물론이고 말고요. 싸움을 할 때 살아남을 확률을 각각 2분의 1이라고 한다면, 40번을 싸워 살아남을 확률이란 2분의 1의 40승, 거의 1조 분의 1이 됩니다. 상상이나 가시오? 당신 같은 경우 승률을 8할로 잡는다손 쳐도 충분히 까마득한 확률이란 말이오.”
“아아…”
샌슨은 입을 쩌억 벌렸다.
“그래서 타이번이 오거 머리는 어디 안 간다고… 너 자꾸 그러면 놔 버린다? 시끄러, 너도 신기해서 입 다물고 얌전히 듣고 있던 주제에. 흠흠, 아무튼 그래서 놀랐던 거군요.”
“그렇소, 게다가 그 싸움이라는 것이 미노타우로스가 열두 마리씩 떼로 출몰하는 싸움이라고 하면, 그걸 그 작은 영지의 경비대만으로 수년을 경비해 왔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경력이오.”
“미노타우로스 하니까 후치 생각나는데요. 스펠을 외우느라 무방비였던 타이번을 지키느라 빗발치듯 날아드는 그레이트 엑스 열 개를 바스타드 소드로 쳐낸 무적의 영웅… 아, 그야 과장된 소문이지. 걔가 손이 열 개냐? 한 개 쳐냈어. 아무튼, 영웅으로 소문나서 마을 여자 애들의 우상이 됐었어요.”
“나도 만나봤소.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소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맞아요, 그 녀석 호칭이 뭔 줄 아세요? 무려 조숙한 기사랍니다. 우하하하!”
그렇게 와하하 웃어대던 샌슨이 어느 순간 갑자기 웃음을 거두고 시무룩한 얼굴이 되자, 마주 빙그레 웃고 있던 로넨은 잠시 당황했다.
“…네, 솔직히 전 마을에서 몬스터와 싸울 때가 더 뿌듯했습니다.”
샌슨은 한숨을 후우 내쉬었다.
“아무리 거창한 명분을 갖다 붙인다 해도, 이 사람 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광기의 땅은 정이 가질 않는군요. 칼이 한 말이 이젠 이해가 갑니다. 인간과 싸우는 것보단 몬스터와 싸우는 편이 마음은 훨씬 편하고 좋아요.”
“퍼시발 공…”
“아아, 그렇다고 제가 싸움에 회의를 느낀다느니 하는 건 아닙니다. 오거에게 그런 고차원적인 사고 능력… 이 아니라! 저들은 적이고, 그런 끔찍한 질병의 무기를 만들어 사우스 그레이드를 지옥으로 만들었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그래도 고향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군요.”
샌슨이 테이블에 내려놓은 투구에는 갈색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아까의 전투에서 묻은 핏자국이다. 비록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래서 막사 바깥은 현재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지만, 샌슨은 본질적으로 살육을 즐길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쪼르륵.
로넨이 말없이 샌슨의 잔에 찬물을 다시 채워주자 목을 가볍게 까딱하고 물컵을 집어들며 샌슨은 탄식 비슷한 중얼거림을 내뱉었다.
“후치 녀석, 지금쯤 뭐 하고 있을까……”
“고향이 그리우시면, 퍼시발 공, 친구를 부르는 건 어떻겠소?”
“네?”
축 처져 있던 샌슨의 고개가 순식간에 번쩍 들렸다. 로넨은 자신의 물컵에 물을 따르며 여상스럽게 말했다.
“말이 통할 동향 친구가 옆에 있으면 좀 낫지 않겠습니까? 사령관이 축 쳐져 있어서 좋을 건 하나도 없고, 어차피 사령관에겐 종자가 하나 필요하지요. 네드발 백작은 지금 헬턴트 영지에 돌아가 있다고 들었소. 그는 이미 열여덟 살로 군무에 종사할 수 있는 나이가 됐지요.”
“그 말씀은…”
“당신들 얘기를 들어봐도 그의 내력은 범상치 않더군요. OPG를 제하더라도 전사의 칭호를 받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였습니다. 저도 잠깐 만나봤지만 침착한 판단력과 임기응변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지요. 당신의 옆을 능히 감당하고도 남아 보이는 소년이었습니다.”
로넨은 샌슨을 보며 부드러운 얼굴로 말을 맺었다.
“──나도 그를 다시 만나 보고 싶습니다만, 어떻소?”
1. Fate of Blood : the 1st day
홀아비 네드발 씨의 외아들이자 초장이 후보에서 이제 준 초장이로 많이 승격한 후치 네드발 백작은, 헬턴트 자작의 이복 남동생인 칼 헬턴트가 비우고 간 숲 속의 오두막에서 혼자 생활하는 장님 마법사 타이번 하이시커의 여러모로 좋은 악몽이 되고 있었다.
나이차이가 무려 15배는 족히 나는데도 불구하고 타이번과 후치의 말싸움 전적은 막상막하. 타이번의 복장을 손쉽게 뒤집고 있다는 점에서 그로 하여금 옛 제자 솔로처를 생각나게 하고 있었으며, 그 때보다 좀더 고약한 것은 후치는 솔로처와 달리 타이번의 제자가 아니므로 말이 막혔을 때 사부의 위엄으로 후치의 입을 콱 틀어막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마법으로 협박한다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타이번은 장님이다. 오브젝트를 설정할 수 없는 그로서는 후치가 잽싸게 튀어버리면 속수무책이었다. 지팡이로 머리를 후려갈기려 해도 후치의 피하는 속도가 점점 늘어가는지라 그것도 여의치 않게 되어 가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후치를 혼내는데 발록을 소환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성년을 코앞에 둔 이 건방진 꼬마는 그 맞장 뜨는 수준이 나날이 일취월장, 타이번으로 하여금 그 문화권에는 있지도 않은 상투를 틀기를 강요하고 있었다.
“저놈은 내 상투 끝까지 기어오를 놈이라니까.”
“상투? 그게 뭐예요?”
“…그런 거 있어. 남방 민족의 옛 풍습이다.”
그리고 이제 타이번은, 심심풀이로 가르쳐준 체스에서조차 점점 기어오르는 후치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칼이 대체 애를 어떻게 버려놓은 거야.”
“어? 체스랑 칼이 무슨 상관이에요? 졌으면 졌다고 인정을 해요.”
정말이지 충격이었다. 이번 판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둔 판이었던 것이다. 장님용으로 특수 제작된 자석 체스판을 정말 열심히 더듬어가며 뒀건만.
진 것보다 더 끔찍한 사태는 이 체스에 우습지도 않은 내기가 걸려있었다는 것이며, 타이번이 진 까닭에 그는 이제 그 피하고 싶은 내기를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라는 것이었다.
그런 내기를 왜 했던가.
그 생각을 하면 또 복장이 뒤집어질 수밖에 없었다.
타이번은 보이지 않는 눈을 흡뜨며 후치 쪽으로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랴. 애당초 자기 나이의 15분의 1밖에 안 되는 어린애의 도발에 넘어간 자신 탓인 것이다.
저 놈은 솔로처보다 더한 놈이야.
타이번은 한숨을 꺼져라 푸욱 내쉬었다. 보이지 않아도 후치의 안면 근육이 한껏 싱글벙글거리고 있는 것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진다.
“자, 대마법사님. 말씀에 책임은 지셔야죠?”
“……”
사태의 시작은 단순했다. 어느 날 문득 빛의 탑 앞에 걸려 있던 핸드레이크의 초상화를 떠올린 후치가 타이번에게 그 초상화가 직접 본인을 보고 그린 것이냐고 물었고, 타이번은 아니라고 대답한 것이었다. 그러자 후치는 왜 모델을 안 했느냐고 물었고 타이번은 그런 건 귀찮다고 대답했으며, 그러자 후치는 젊어서 너무 못 생겨서 차마 모델로 서지 못한 거 아니냐고, 그래서 그 초상화는 엄청나게 미화된 것 아니냐고 빙글거렸고, 동서고금 남녀노소 자기가 못생겼다는 소리를 듣고 즐거워할 사람은 없는지라 다 늙은 노인네가 어린애를 붙잡고 말씨름을 시작한 것이 비극의 단초였다. 대체 어떻게 하다가 체스에서 후치가 이기면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폴리모프 셀프를 하겠다는 약속을 하게 된 건지, 경위가 제대로 기억도 안 난다.
모름지기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이는 법이다.
쩝.
죽는 고양이 꼴이 된 타이번은 속으로 혀를 차며 입을 떼었다.
“저…”
“남아일언 중천금!”
……말도 하기 전에 격침당했다.
“너, 그 말은 어디서 배웠냐?”
“칼한테 들었죠. 자이펀 고사성어라면서요? 유용하던데.”
“…칼이 아무래도 애 교육을 잘못 시켰어.”
“괜히 칼 들먹이지 말고 약속이나 지켜요.”
“얘기했잖아. 빛의 탑이 생긴 건 나이 먹어서고, 그래서 거기 걸린 초상화는 상상으로 그린 거라고.”
“오죽 자신 없었으면 상상으로 미화하라고 했을까. 당신이라면 옛 모습을 보여주는 건 장난도 아니었을 텐데요.”
“내가 좋아서 그렸냐? 지들이 달겠다고 하도 난리치니까 허락해준 거지. 그 귀찮은 짓을 대체 내가 왜 한단 말이냐?”
“어허, 그럼 허락을 말았어야죠? 왜 자기 모습도 아닌 그림을 달아도 된다고 허락했대요? 잔소리 말고 약.속.지.켜.요!”
이제는 빼도 박도 할 수 없다. 미친 척 하고 무시하고 마법으로 으름장 놓거나 할 수는 있겠지만 그 다음에 따라붙을 ‘거짓말쟁이 타이번’ 소리가 아찔하다. 후치라면 물레방앗간 노래를 짓던 그 솜씨로 멋들어진 곡과 가사를 지어내서 온 마을에 퍼뜨리고도 남을 놈이다. 그래서 온 마을이 자신의 젊은 시절 모습에 초롱초롱 지대한 관심을 갖게 만들거나 아니면 자신의 젊은 시절을 굉장한 추남(이면 낫지, 저놈이면 어쩌면 불능이라고 퍼뜨릴 수도)으로 포장할 것이다. 결코 유쾌하지 않은 사태다.
그리고 솔직히, 자칭 미소년이 어쩌고 하는 후치의 입을 봉하고 싶다는 욕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젠 거의 청년 티가 완연히 나는 놈이, 그것도 1년 전에 이미 조금만 재를 바르면 순식간에 20대 후반으로도 보였던 놈이 ‘여자로 오인되기 쉬운 파릇파릇한 미소년’ 운운하는 걸 들으면 장님이라도 밸이 꼴리는 법이다. 제미니라도 그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서 입을 막아주면 좋으련만, 제미니도 맞장구치며 낄낄대는 꼴이라니!
오냐 좋다, 내 미모(?)로 네놈 입을 콱 봉해주지! 나도 한 시절 미모(?)로 풍미했던 몸이다 이거야! 라고 사실과 전혀 다른 말을 속으로 외치며(젊은 시절을 마법 연구실과 전쟁터에만 처박혀 보낸 마법사가 언제 미모(?)로 일세를 풍미한단 말인가), 타이번은 주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후치의 초롱초롱 호기심 어린 시선이 온몸을 뚫고 있는 것을 느끼며, 타이번은 시동어를 외쳤다.
“폴리모프 셀프!”
* * *
──마법이란 놀라운 것이다.
그 마법의 작용을 고스란히 쳐다보는 구경꾼 입장에서는 정녕 턱이 빠지고 침이 떨어질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타이번의 쭈글쭈글한 손등이 팽팽하게 펴졌다.
비쩍 마른 손목에 살이 오르기 시작하고 검버섯이 사라졌으며 척추가 쫙 펴지면서 키가 커졌다.
무성하던 백발이 은빛을 머금으며 길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온통 허연 눈자위 위에 파란 호수 빛의 눈동자가 깃들어 갔다.
그리하여 폴리모프가 끝났을 때, 후치의 앞에는 실버 블론드를 겨드랑이 약간 위까지 찰랑거리는, 전반적으로 선이 고운 청년이 서 있게 되었다.
“어때?”
타이번은 어깨를 으쓱하며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어떠냐, 이 건방진 꼬맹이야. 빛의 탑에 그려진 그 초상화가 내 미모(?)를 오히려 깎아내려 그렸다는 걸 알겠지?
그런데 후치의 반응이 영 이상했다. 너무 잠잠했던 것이다. 눈동자가 생겼어도 시력은 여전히 없는 타이번으로서는 영문을 알 수가 없어서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너무 근사해서 말문이 막혔냐?”
농담조의 질문도 던져보았지만 후치는 여전히 잠잠했다.
그냥 잠잠한 것이 아니었다. 장님인 타이번은 민감하게 느낄 수 있었다. 후치는 지금 ‘경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체 왜? 갑자기 이마에 뿔이 솟은 것도 아니고, 분명히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 귀 두 개일 텐데?
“……후치?”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그 때였다.
똑똑.
누군가가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후치가 갑자기 흡 소리를 내며 화들짝 놀라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타이번도 깜짝 놀랐다.
“이불 속에 들어가 있어요!”
후치의 나지막하지만 다급한 소리에 타이번도 재빨리 침대 쪽으로 몸을 날렸다. 익숙한 곳이었기에 그 동작은 눈 뜬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민첩했다.
타이번이 이불을 푹 뒤집어쓰자 그제야 후치는 바깥의 인물에게 말을 건넸다.
“누구세요?”
“나다, 터너.”
“아, 예. 들어오세요.”
끼익. 문이 열리며 터너가 오두막 안으로 들어왔다.
“네 아버지한테 물어보니까 네가 또 타이번한테 갔다고 하더라. 근데 타이번은?”
“아, 예, 몸이 좀 안 편찮으셔서 막 잠드셨어요.”
“그래? 너랑 타이번 둘 다에게 볼일이 있었는데……. 그럼 나중에 네가 타이번한테 전해 줄래? 아픈 노인 깨울 수도 없고.”
“무슨 일인데요?”
“아, 성 쪽에 전령이 왔다.”
“네?”
“듣자니까 샌슨이 보냈다는 것 같더라.”
“네?”
두 번째의 “네?”는 거의 고함에 가까웠다. 이불 너머로 놀라는 후치의 목소리를 들으며 타이번도 내심 고개를 갸우뚱했다. 남부 전선에 나가 있는 샌슨이 자신과 후치 둘 다에게 볼일이 있을 만한 일이 있던가?
터너의 말은 계속됐다.
“아무튼 난 전했으니까, 준비되거든 성으로 빨리 와라. 아, 아니면 너라도 지금 같이 갈래?”
“아, 잠깐만 문 밖에서 기다려 줄래요? 금방 나갈게요.”
“그래라.”
끼익. 터너가 나가는 소리가 들린 직후, 타이번은 이불이 훌렁 들리는 것을 느꼈다.
“이봐요 타이번, 나 다녀올 동안 폴리모프 풀고 있어요.”
“말 안 해도 알아, 인석아.”
“알았어요, 그럼.”
다급한 목소리로 할 말을 다한 후치는 이불을 도로 덮고 재빨리 자기 물건을 챙겨 오두막을 나가버렸다. 끼이익, 문 여닫히는 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왔다.
“뭐야, 뭐…….”
뒤에 남은 타이번은 어안이 벙벙해서 몸을 일으켰다.
하필 타이밍도 나쁘게 터너가 들어오는 바람에 물어보지 못했지만, 후치의 반응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그는 민감한 손으로 얼굴을 구석구석 짚어보았지만, 아무리 더듬어도 도무지 이상한 곳을 찾아낼 수 없었다. 대체 뭐야, 뭐?
“오거든 물어봐야겠군.”
일단은 폴리모프를 푸는 게 우선이다. 그는 폴리모프 해제의 주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 * *
내색은 안 하고 있었지만 터너를 따라서 걸어가는 후치의 속에서는 지금 태풍 같은 격랑이 휘몰아치고 있는 중이었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대마법사 핸드레이크, 핸드레이크 ‘휴리첼’은 분명히 결혼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으로, 그의 후손으로 남은 ‘휴리첼 가’의 사람은 없다. 핸드레이크의 부모 대부터 따지자면 혈연 관계가 없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그것은 무려 300년, 10대도 더 이전의 일이다.
아니, 설령 후손이 있다 하더라도 ‘그’는 핸드레이크와 상관이 없다. 설령 핸드레이크의 직계 자손이라 하더라도 9대쯤 내려가면 그 피는 무려 1천분의 1 수준밖에 섞여있지 않게 된다.
그런데, 왜? 어째서?
어째서 ‘핸드레이크’가 ‘그’의 얼굴을 하고 있는 거지?
── 자신 앞에서 산산 조각났던 휴리첼 가의 마지막 비극,
‘그’의 얼굴을.
* * *
성에서 샌슨의 전갈을 받고 타이번의 오두막으로 돌아왔을 때, 후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여전히 ‘그’의 얼굴을 하고 있는 타이번이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많이 침착해진 후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손으로 짚으며 짐짓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타이번을 쑤셨다.
“뭐예요? 그거. 그렇게 자랑하고 싶었어요?”
타이번도 고함을 빽 질렀다.
“자랑 못 할 건 뭐 있냐!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엥?”
오히려 당당하게 맞받아치는 타이번의 기세에 눌려 후치는 잠시 찔끔했다. 자세히 보니 타이번의 얼굴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당황과 곤혹의 빛이 강력하게 떠올라 있었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안 풀려.”
“네?”
“폴리모프가 안 풀린다구!”
“……네?”
휘이잉.
한줄기 썰렁한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 후치의 얼굴도 타이번과 똑같이 곤혹과 황당함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당신, 핸드레이크 맞죠?”
“그건 왜 물어?”
“클래스 9의 마스터 맞아요?”
“당연하지!”
“그런데 왜 자기가 건 마법도 못 풀어요?”
“내가 알아! 나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구!”
“…….”
후치가 본격적으로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노려보자 열 받은 타이번도 버럭 화를 내기 시작했다.
“뭐야, 그 눈초리는!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게냐?”
“보이는 척 하지 말아요. 정말로 자랑하고 싶은 거 아녜요?”
“아니라니까! 내가 네놈 같은 줄 알아!”
“그럼 왜 안 풀어요?”
“내가 좋아서 안 푸는 거냐? 안 풀린다니까!”
“……말도 안 돼.”
“그럼 네가 풀어 봐!”
“…….”
“…….”
휘이잉.
다시 한 번 스산한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후치가 경악한 까닭을 물을 생각도, 샌슨의 전갈을 전할 생각도 못 한 채,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는 당혹스런 공기만이 썰렁하게 감돌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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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모프 셀프가 실제로 저런 게 가능한 주문인지는 모릅니다.;
써놓은 데까지 올려봅니다. (뒷날은 기약없어요~~… 어차피 2001년에 쓰다 만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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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라자 패러디>
……저 용맹 무비하며 동시에 비할 데 없는 지혜로움을 동시에 갖춘 전사이자 현자인 샌슨 퍼시발마저도 때로는 그의 어린 종자 후치 네드발의 도움을 받았다는 믿을 만한 기록들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이를 신빙성 없는 자료로 생각하곤 하는데, 한낱 평범한 소년에 불과했던 후치 네드발이 세상에 그 이름이라도 전하게 된 것은 오로지 위대한 샌슨 퍼시발이 그를 가엾게 여겨 종자로서 데리고 다녔다는 사실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수많은 옛노래와 가인들의 하프에서 울려퍼졌던 진리를 다시 한번 밝힌다. 가장 현명한 자도 때로는 가장 어리석은 자에게 배울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현명함을 더욱 빛나게 할지언정 그 광휘를 줄어들게 하지는 않는 법이다…….
「품위 있고 고상한 켄턴 시장 말레스 추발렉의 도움으로 출간된, 믿을 수 있는 바이서스의 시민으로서 켄턴 사집관으로 봉사한 현명한 돌로메네 압실링거가 바이서스의 국민들에게 고하는 신비롭고도 가치 있는 이야기」 돌로메네 지음, 770년. 제12권 15쪽.
0. Fanatic South
해질 녘의 석양 빛 아래, 전투는 끝나 있었다.
수없이 널브러진 시체와 갑주와, 그리고 부러진 무기들 사이로 한줄기 바람이 휘감아 돈다.
대충 두어 가지 종류로 구분되는시체들, 갑주들, 그리고 무기들.
아직 죽지 않은 부상병도 아주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의 희미한 경련은 그리 오래지 않아 이내 사그라든다. 그 옆에 꽂힌 반토막 난 헬버드가 그의 묘표 대신이 되어줄 뿐이다.
그 배 주위에는 검붉은 얼룩이 크게 생겨 있다. 그 뻥 뚫린 한복판에는 역시 검붉게 말라붙은 고깃덩이 속으로 까마귀에게 찢어발겨진 누르스름한 지방과 구더기들이 둥지를 튼 희여멀건한 뼈가 보인다.
그런 시체가 한없이 널브러져 있는 이곳,
광기의 남녘──사우스 그레이드 칼피아 호 연안.
그 한복판에 세워진 한 막사로 한 청년이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펄럭.
입구의 천이 들썩이며 내는 소리에, 안에 앉아 있던 중년의 남자가 고개를 든다.
“오셨구려, 퍼시발 공.”
막사 안은 간결했다. 딱딱한 야전침대, 그 앞의 간이 나무 탁자와 의자 몇 개. 샌슨은 그중 한 의자에 앉아 있는 로넨 휴리첼 백작의 맞은편 자리에 대충 걸터앉았다.
“휴우, 땀나는군요.”
“더우면 투구를 벗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
샌슨은 혀를 차며 투구를 벗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런 그의 앞에 로넨이 말없이 물을 따라 내밀어 준다.
“고맙습니다.”
꿀꺽 꿀꺽, 샌슨은 목젖을 울리며 단숨에 들이켰다.
“푸하─, 살 것 같네요.”
샌슨은 머리를 붕붕 휘저으며 온몸으로 상쾌함을 웅변했다. 그런 샌슨을 로넨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 물었다.
“그래, 좀 어떻습니까?”
“음…, 글쎄요, 그 말이 사실이란 건 확실히 알겠더군요.”
“네?”
“그 왜, 대륙 최고의 단위 전투력이란 소리 말입니다.”
로넨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지금은 자신들의 시간으로 돌아간 천공의 3기사의 대장 그레이 휠드런의 간청 및 칼과 자크의 뒷공작이 어우러져 이곳 바이서스의 남부로 파견된 일스 공국의 장미 기사단은, 켄턴의 데스나이트가 사라지고 정지된 시간이 제 흐름을 되찾은 지금에 와서도 이곳 사우스 그레이드에 그대로 주둔해서 샌슨의 지휘 아래 자이펀의 최정예 부대들과 싸우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분명 데스나이트와 싸우기 위해 먼 남쪽으로 달려온 이들 저스티스 기사단은 정작 데스나이트와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여기 묶여 있었다. 도착 후 바로 데스나이트가 사라진 것도 있긴 했지만, 칼이 대체 어떤 정치 수완을 발휘하여 일스 대공의 항의와 반환 요구를 모조리 개소리로 만들고 뻔뻔하게도 바이서스 장수의 지휘 아래서 잠자코 싸우게 만들었는지, 샌슨과 로넨은 그저 입만 쩍 벌릴 뿐이었다.
“저 사람이 그 허허거리던 내 친구 칼이 맞나 싶을 정도라니까요.”
샌슨은 기가 찬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그들이 군말 없이 복종하고 있는 건 지휘관의 역량 덕이 더 큰 것 같은데요, 사령관 각하. 스스로의 능력을 과소 평가할 건 없잖소?”
“일스의 기사단인 그들에게 제가 충성의 대상이 될 수 있겠습니까?”
샌슨은 예전에 로넨의 말을 떠올리며 반문했다.
“그러니까 대단한 거지요.”
“…네?”
갸우뚱한 표정으로 다시 묻는 샌슨을 보며 로넨은 빙그레 웃었다.
“그러니까, 원래라면 충성의 대상은커녕 복종의 대상도 될 수 없는 이국의 장수 말을 그들이 고분고분 듣는 건 순전히 그 장수의 역량이 그만큼 출중하기 때문이란 얘기가 되지 않겠소, 이의의 여지가 없을 만큼.”
면전에서 거한 칭찬을 들은 샌슨의 얼굴이 벌개졌다.
“하하, 아하하하, 민망하군요. 언감생심 오거가… 시끄러! 그 소린 전에도 한 번 써먹었잖아. 흠흠, 글쎄요, 말씀은 감사하지만 고향의 소규모 경비대로 몬스터하고만 싸우던 제게 그런 사랑의 물레방아… 시끄럽다니까! 지휘 능력이 있을 것 같진 않군요. 그 부분은 로넨 씨의 힘이 더 크지 않겠습니까?”
로넨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몬스터라면 말씀마따나 그런 소규모 경비대로 몬스터의 습격을 40번이나 막아낸 그 역량을 인간하고 싸운 것과 비교할 수 없죠.”
“아, 그거 그거. 전에 타이번도 그러던데 40번 싸워 살아남았다는 게 그렇게 신기한 겁니까?”
“물론이고 말고요. 싸움을 할 때 살아남을 확률을 각각 2분의 1이라고 한다면, 40번을 싸워 살아남을 확률이란 2분의 1의 40승, 거의 1조 분의 1이 됩니다. 상상이나 가시오? 당신 같은 경우 승률을 8할로 잡는다손 쳐도 충분히 까마득한 확률이란 말이오.”
“아아…”
샌슨은 입을 쩌억 벌렸다.
“그래서 타이번이 오거 머리는 어디 안 간다고… 너 자꾸 그러면 놔 버린다? 시끄러, 너도 신기해서 입 다물고 얌전히 듣고 있던 주제에. 흠흠, 아무튼 그래서 놀랐던 거군요.”
“그렇소, 게다가 그 싸움이라는 것이 미노타우로스가 열두 마리씩 떼로 출몰하는 싸움이라고 하면, 그걸 그 작은 영지의 경비대만으로 수년을 경비해 왔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경력이오.”
“미노타우로스 하니까 후치 생각나는데요. 스펠을 외우느라 무방비였던 타이번을 지키느라 빗발치듯 날아드는 그레이트 엑스 열 개를 바스타드 소드로 쳐낸 무적의 영웅… 아, 그야 과장된 소문이지. 걔가 손이 열 개냐? 한 개 쳐냈어. 아무튼, 영웅으로 소문나서 마을 여자 애들의 우상이 됐었어요.”
“나도 만나봤소.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소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맞아요, 그 녀석 호칭이 뭔 줄 아세요? 무려 조숙한 기사랍니다. 우하하하!”
그렇게 와하하 웃어대던 샌슨이 어느 순간 갑자기 웃음을 거두고 시무룩한 얼굴이 되자, 마주 빙그레 웃고 있던 로넨은 잠시 당황했다.
“…네, 솔직히 전 마을에서 몬스터와 싸울 때가 더 뿌듯했습니다.”
샌슨은 한숨을 후우 내쉬었다.
“아무리 거창한 명분을 갖다 붙인다 해도, 이 사람 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광기의 땅은 정이 가질 않는군요. 칼이 한 말이 이젠 이해가 갑니다. 인간과 싸우는 것보단 몬스터와 싸우는 편이 마음은 훨씬 편하고 좋아요.”
“퍼시발 공…”
“아아, 그렇다고 제가 싸움에 회의를 느낀다느니 하는 건 아닙니다. 오거에게 그런 고차원적인 사고 능력… 이 아니라! 저들은 적이고, 그런 끔찍한 질병의 무기를 만들어 사우스 그레이드를 지옥으로 만들었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그래도 고향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군요.”
샌슨이 테이블에 내려놓은 투구에는 갈색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아까의 전투에서 묻은 핏자국이다. 비록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래서 막사 바깥은 현재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지만, 샌슨은 본질적으로 살육을 즐길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쪼르륵.
로넨이 말없이 샌슨의 잔에 찬물을 다시 채워주자 목을 가볍게 까딱하고 물컵을 집어들며 샌슨은 탄식 비슷한 중얼거림을 내뱉었다.
“후치 녀석, 지금쯤 뭐 하고 있을까……”
“고향이 그리우시면, 퍼시발 공, 친구를 부르는 건 어떻겠소?”
“네?”
축 처져 있던 샌슨의 고개가 순식간에 번쩍 들렸다. 로넨은 자신의 물컵에 물을 따르며 여상스럽게 말했다.
“말이 통할 동향 친구가 옆에 있으면 좀 낫지 않겠습니까? 사령관이 축 쳐져 있어서 좋을 건 하나도 없고, 어차피 사령관에겐 종자가 하나 필요하지요. 네드발 백작은 지금 헬턴트 영지에 돌아가 있다고 들었소. 그는 이미 열여덟 살로 군무에 종사할 수 있는 나이가 됐지요.”
“그 말씀은…”
“당신들 얘기를 들어봐도 그의 내력은 범상치 않더군요. OPG를 제하더라도 전사의 칭호를 받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였습니다. 저도 잠깐 만나봤지만 침착한 판단력과 임기응변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지요. 당신의 옆을 능히 감당하고도 남아 보이는 소년이었습니다.”
로넨은 샌슨을 보며 부드러운 얼굴로 말을 맺었다.
“──나도 그를 다시 만나 보고 싶습니다만, 어떻소?”
1. Fate of Blood : the 1st day
홀아비 네드발 씨의 외아들이자 초장이 후보에서 이제 준 초장이로 많이 승격한 후치 네드발 백작은, 헬턴트 자작의 이복 남동생인 칼 헬턴트가 비우고 간 숲 속의 오두막에서 혼자 생활하는 장님 마법사 타이번 하이시커의 여러모로 좋은 악몽이 되고 있었다.
나이차이가 무려 15배는 족히 나는데도 불구하고 타이번과 후치의 말싸움 전적은 막상막하. 타이번의 복장을 손쉽게 뒤집고 있다는 점에서 그로 하여금 옛 제자 솔로처를 생각나게 하고 있었으며, 그 때보다 좀더 고약한 것은 후치는 솔로처와 달리 타이번의 제자가 아니므로 말이 막혔을 때 사부의 위엄으로 후치의 입을 콱 틀어막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마법으로 협박한다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타이번은 장님이다. 오브젝트를 설정할 수 없는 그로서는 후치가 잽싸게 튀어버리면 속수무책이었다. 지팡이로 머리를 후려갈기려 해도 후치의 피하는 속도가 점점 늘어가는지라 그것도 여의치 않게 되어 가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후치를 혼내는데 발록을 소환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성년을 코앞에 둔 이 건방진 꼬마는 그 맞장 뜨는 수준이 나날이 일취월장, 타이번으로 하여금 그 문화권에는 있지도 않은 상투를 틀기를 강요하고 있었다.
“저놈은 내 상투 끝까지 기어오를 놈이라니까.”
“상투? 그게 뭐예요?”
“…그런 거 있어. 남방 민족의 옛 풍습이다.”
그리고 이제 타이번은, 심심풀이로 가르쳐준 체스에서조차 점점 기어오르는 후치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칼이 대체 애를 어떻게 버려놓은 거야.”
“어? 체스랑 칼이 무슨 상관이에요? 졌으면 졌다고 인정을 해요.”
정말이지 충격이었다. 이번 판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둔 판이었던 것이다. 장님용으로 특수 제작된 자석 체스판을 정말 열심히 더듬어가며 뒀건만.
진 것보다 더 끔찍한 사태는 이 체스에 우습지도 않은 내기가 걸려있었다는 것이며, 타이번이 진 까닭에 그는 이제 그 피하고 싶은 내기를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라는 것이었다.
그런 내기를 왜 했던가.
그 생각을 하면 또 복장이 뒤집어질 수밖에 없었다.
타이번은 보이지 않는 눈을 흡뜨며 후치 쪽으로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랴. 애당초 자기 나이의 15분의 1밖에 안 되는 어린애의 도발에 넘어간 자신 탓인 것이다.
저 놈은 솔로처보다 더한 놈이야.
타이번은 한숨을 꺼져라 푸욱 내쉬었다. 보이지 않아도 후치의 안면 근육이 한껏 싱글벙글거리고 있는 것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진다.
“자, 대마법사님. 말씀에 책임은 지셔야죠?”
“……”
사태의 시작은 단순했다. 어느 날 문득 빛의 탑 앞에 걸려 있던 핸드레이크의 초상화를 떠올린 후치가 타이번에게 그 초상화가 직접 본인을 보고 그린 것이냐고 물었고, 타이번은 아니라고 대답한 것이었다. 그러자 후치는 왜 모델을 안 했느냐고 물었고 타이번은 그런 건 귀찮다고 대답했으며, 그러자 후치는 젊어서 너무 못 생겨서 차마 모델로 서지 못한 거 아니냐고, 그래서 그 초상화는 엄청나게 미화된 것 아니냐고 빙글거렸고, 동서고금 남녀노소 자기가 못생겼다는 소리를 듣고 즐거워할 사람은 없는지라 다 늙은 노인네가 어린애를 붙잡고 말씨름을 시작한 것이 비극의 단초였다. 대체 어떻게 하다가 체스에서 후치가 이기면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폴리모프 셀프를 하겠다는 약속을 하게 된 건지, 경위가 제대로 기억도 안 난다.
모름지기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이는 법이다.
쩝.
죽는 고양이 꼴이 된 타이번은 속으로 혀를 차며 입을 떼었다.
“저…”
“남아일언 중천금!”
……말도 하기 전에 격침당했다.
“너, 그 말은 어디서 배웠냐?”
“칼한테 들었죠. 자이펀 고사성어라면서요? 유용하던데.”
“…칼이 아무래도 애 교육을 잘못 시켰어.”
“괜히 칼 들먹이지 말고 약속이나 지켜요.”
“얘기했잖아. 빛의 탑이 생긴 건 나이 먹어서고, 그래서 거기 걸린 초상화는 상상으로 그린 거라고.”
“오죽 자신 없었으면 상상으로 미화하라고 했을까. 당신이라면 옛 모습을 보여주는 건 장난도 아니었을 텐데요.”
“내가 좋아서 그렸냐? 지들이 달겠다고 하도 난리치니까 허락해준 거지. 그 귀찮은 짓을 대체 내가 왜 한단 말이냐?”
“어허, 그럼 허락을 말았어야죠? 왜 자기 모습도 아닌 그림을 달아도 된다고 허락했대요? 잔소리 말고 약.속.지.켜.요!”
이제는 빼도 박도 할 수 없다. 미친 척 하고 무시하고 마법으로 으름장 놓거나 할 수는 있겠지만 그 다음에 따라붙을 ‘거짓말쟁이 타이번’ 소리가 아찔하다. 후치라면 물레방앗간 노래를 짓던 그 솜씨로 멋들어진 곡과 가사를 지어내서 온 마을에 퍼뜨리고도 남을 놈이다. 그래서 온 마을이 자신의 젊은 시절 모습에 초롱초롱 지대한 관심을 갖게 만들거나 아니면 자신의 젊은 시절을 굉장한 추남(이면 낫지, 저놈이면 어쩌면 불능이라고 퍼뜨릴 수도)으로 포장할 것이다. 결코 유쾌하지 않은 사태다.
그리고 솔직히, 자칭 미소년이 어쩌고 하는 후치의 입을 봉하고 싶다는 욕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젠 거의 청년 티가 완연히 나는 놈이, 그것도 1년 전에 이미 조금만 재를 바르면 순식간에 20대 후반으로도 보였던 놈이 ‘여자로 오인되기 쉬운 파릇파릇한 미소년’ 운운하는 걸 들으면 장님이라도 밸이 꼴리는 법이다. 제미니라도 그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서 입을 막아주면 좋으련만, 제미니도 맞장구치며 낄낄대는 꼴이라니!
오냐 좋다, 내 미모(?)로 네놈 입을 콱 봉해주지! 나도 한 시절 미모(?)로 풍미했던 몸이다 이거야! 라고 사실과 전혀 다른 말을 속으로 외치며(젊은 시절을 마법 연구실과 전쟁터에만 처박혀 보낸 마법사가 언제 미모(?)로 일세를 풍미한단 말인가), 타이번은 주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후치의 초롱초롱 호기심 어린 시선이 온몸을 뚫고 있는 것을 느끼며, 타이번은 시동어를 외쳤다.
“폴리모프 셀프!”
──마법이란 놀라운 것이다.
그 마법의 작용을 고스란히 쳐다보는 구경꾼 입장에서는 정녕 턱이 빠지고 침이 떨어질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타이번의 쭈글쭈글한 손등이 팽팽하게 펴졌다.
비쩍 마른 손목에 살이 오르기 시작하고 검버섯이 사라졌으며 척추가 쫙 펴지면서 키가 커졌다.
무성하던 백발이 은빛을 머금으며 길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온통 허연 눈자위 위에 파란 호수 빛의 눈동자가 깃들어 갔다.
그리하여 폴리모프가 끝났을 때, 후치의 앞에는 실버 블론드를 겨드랑이 약간 위까지 찰랑거리는, 전반적으로 선이 고운 청년이 서 있게 되었다.
“어때?”
타이번은 어깨를 으쓱하며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어떠냐, 이 건방진 꼬맹이야. 빛의 탑에 그려진 그 초상화가 내 미모(?)를 오히려 깎아내려 그렸다는 걸 알겠지?
그런데 후치의 반응이 영 이상했다. 너무 잠잠했던 것이다. 눈동자가 생겼어도 시력은 여전히 없는 타이번으로서는 영문을 알 수가 없어서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너무 근사해서 말문이 막혔냐?”
농담조의 질문도 던져보았지만 후치는 여전히 잠잠했다.
그냥 잠잠한 것이 아니었다. 장님인 타이번은 민감하게 느낄 수 있었다. 후치는 지금 ‘경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체 왜? 갑자기 이마에 뿔이 솟은 것도 아니고, 분명히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 귀 두 개일 텐데?
“……후치?”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그 때였다.
똑똑.
누군가가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후치가 갑자기 흡 소리를 내며 화들짝 놀라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타이번도 깜짝 놀랐다.
“이불 속에 들어가 있어요!”
후치의 나지막하지만 다급한 소리에 타이번도 재빨리 침대 쪽으로 몸을 날렸다. 익숙한 곳이었기에 그 동작은 눈 뜬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민첩했다.
타이번이 이불을 푹 뒤집어쓰자 그제야 후치는 바깥의 인물에게 말을 건넸다.
“누구세요?”
“나다, 터너.”
“아, 예. 들어오세요.”
끼익. 문이 열리며 터너가 오두막 안으로 들어왔다.
“네 아버지한테 물어보니까 네가 또 타이번한테 갔다고 하더라. 근데 타이번은?”
“아, 예, 몸이 좀 안 편찮으셔서 막 잠드셨어요.”
“그래? 너랑 타이번 둘 다에게 볼일이 있었는데……. 그럼 나중에 네가 타이번한테 전해 줄래? 아픈 노인 깨울 수도 없고.”
“무슨 일인데요?”
“아, 성 쪽에 전령이 왔다.”
“네?”
“듣자니까 샌슨이 보냈다는 것 같더라.”
“네?”
두 번째의 “네?”는 거의 고함에 가까웠다. 이불 너머로 놀라는 후치의 목소리를 들으며 타이번도 내심 고개를 갸우뚱했다. 남부 전선에 나가 있는 샌슨이 자신과 후치 둘 다에게 볼일이 있을 만한 일이 있던가?
터너의 말은 계속됐다.
“아무튼 난 전했으니까, 준비되거든 성으로 빨리 와라. 아, 아니면 너라도 지금 같이 갈래?”
“아, 잠깐만 문 밖에서 기다려 줄래요? 금방 나갈게요.”
“그래라.”
끼익. 터너가 나가는 소리가 들린 직후, 타이번은 이불이 훌렁 들리는 것을 느꼈다.
“이봐요 타이번, 나 다녀올 동안 폴리모프 풀고 있어요.”
“말 안 해도 알아, 인석아.”
“알았어요, 그럼.”
다급한 목소리로 할 말을 다한 후치는 이불을 도로 덮고 재빨리 자기 물건을 챙겨 오두막을 나가버렸다. 끼이익, 문 여닫히는 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왔다.
“뭐야, 뭐…….”
뒤에 남은 타이번은 어안이 벙벙해서 몸을 일으켰다.
하필 타이밍도 나쁘게 터너가 들어오는 바람에 물어보지 못했지만, 후치의 반응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그는 민감한 손으로 얼굴을 구석구석 짚어보았지만, 아무리 더듬어도 도무지 이상한 곳을 찾아낼 수 없었다. 대체 뭐야, 뭐?
“오거든 물어봐야겠군.”
일단은 폴리모프를 푸는 게 우선이다. 그는 폴리모프 해제의 주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내색은 안 하고 있었지만 터너를 따라서 걸어가는 후치의 속에서는 지금 태풍 같은 격랑이 휘몰아치고 있는 중이었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대마법사 핸드레이크, 핸드레이크 ‘휴리첼’은 분명히 결혼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으로, 그의 후손으로 남은 ‘휴리첼 가’의 사람은 없다. 핸드레이크의 부모 대부터 따지자면 혈연 관계가 없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그것은 무려 300년, 10대도 더 이전의 일이다.
아니, 설령 후손이 있다 하더라도 ‘그’는 핸드레이크와 상관이 없다. 설령 핸드레이크의 직계 자손이라 하더라도 9대쯤 내려가면 그 피는 무려 1천분의 1 수준밖에 섞여있지 않게 된다.
그런데, 왜? 어째서?
어째서 ‘핸드레이크’가 ‘그’의 얼굴을 하고 있는 거지?
── 자신 앞에서 산산 조각났던 휴리첼 가의 마지막 비극,
‘그’의 얼굴을.
성에서 샌슨의 전갈을 받고 타이번의 오두막으로 돌아왔을 때, 후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여전히 ‘그’의 얼굴을 하고 있는 타이번이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많이 침착해진 후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손으로 짚으며 짐짓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타이번을 쑤셨다.
“뭐예요? 그거. 그렇게 자랑하고 싶었어요?”
타이번도 고함을 빽 질렀다.
“자랑 못 할 건 뭐 있냐!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엥?”
오히려 당당하게 맞받아치는 타이번의 기세에 눌려 후치는 잠시 찔끔했다. 자세히 보니 타이번의 얼굴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당황과 곤혹의 빛이 강력하게 떠올라 있었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안 풀려.”
“네?”
“폴리모프가 안 풀린다구!”
“……네?”
휘이잉.
한줄기 썰렁한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 후치의 얼굴도 타이번과 똑같이 곤혹과 황당함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당신, 핸드레이크 맞죠?”
“그건 왜 물어?”
“클래스 9의 마스터 맞아요?”
“당연하지!”
“그런데 왜 자기가 건 마법도 못 풀어요?”
“내가 알아! 나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구!”
“…….”
후치가 본격적으로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노려보자 열 받은 타이번도 버럭 화를 내기 시작했다.
“뭐야, 그 눈초리는!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게냐?”
“보이는 척 하지 말아요. 정말로 자랑하고 싶은 거 아녜요?”
“아니라니까! 내가 네놈 같은 줄 알아!”
“그럼 왜 안 풀어요?”
“내가 좋아서 안 푸는 거냐? 안 풀린다니까!”
“……말도 안 돼.”
“그럼 네가 풀어 봐!”
“…….”
“…….”
휘이잉.
다시 한 번 스산한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후치가 경악한 까닭을 물을 생각도, 샌슨의 전갈을 전할 생각도 못 한 채,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는 당혹스런 공기만이 썰렁하게 감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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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모프 셀프가 실제로 저런 게 가능한 주문인지는 모릅니다.;
# by | 2004/05/08 16:15 | 창작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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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을 어기고서라도 '하하'를 (모음 빼고) 쓰고 싶은 마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