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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소장본.

 
교차로에 누가 '정말 소장본으로 삼을만한 책이 뭐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올렸다.

...그거야 최소 5년은 지나보기 전엔 몰라;;

실은 나도 소싯적에 '평생 갖고 있을 거야!'라는 야심찬 각오로 모았던 만화책, 어느 순간 깡그리 정리한 후 "헉, 팔면 파는구나;"라는 충격을 먹었더랬다.
그 이후에는 "이제는 정말 오래 갖고 있을 것만 모으자"라고 생각했는데, 그 명제도 지금은 포기한 것이, 분명 당시에는 활활 타올랐던 것들의 대부분이 지금은 식어서; 오히려 당시에도 뭉근했던 것들은 지금도 뭉근해서 계속 보게 된달까.
하지만 당시에 타올라서 열심히 모았던 것을 후회하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다시 언제 그렇게 불타볼까 싶게 행복했으면 그 기간이 설령 반년이었다 해도 분명 가치는 있지 않겠는가. 그쯤되면 '좋아했었지'라는 감정의 기억만으로도 가치는 있는 법이다. (그리고 반년보단 더 오래갔다) 또 그 기간이 짧다 해도 가령 92년에 아앗, 여신님! 애니를 60번쯤 봤다는 사람이 반년만에 애정이 식었다 한들 이미 본전은 뽑고도 남고남고 또 남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각종 LD박스 등을 보면서 한숨은 나오지만 당시 잘 즐겼으니 딱히 손해봤다는 느낌은 없다. 다만 버릴 수도 팔 수도 없는 처치곤란이라 문제일뿐; (그렇다고 누구 주긴... 아무래도 원가 생각이 안 날 수가 없고; 200만원짜리 10만원에 넘길 바엔 그냥 갖고 있고 말지; 랄까. 그나마도 누가 사갈 사람 있기는 할까? 죄다 DVD 나온 것들인데 -_-;)

또한, 당시에는 이분법적 사고를 해서, "한번 읽을 거면 아예 안 본다" "여러번 읽을 것은 산다" 라는 생각을 해서 대여점에 발길을 딱 끊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편협하다 싶다. 한번 읽고 말더라도 읽을 때 즐거웠다면 의의는 있는 거라고 요새는 생각하고 있다. (아무래도 엔피(=공짜)의 영향이 큰듯;;) 물론 이 생각도 언제 또 바뀔 지 모른다.


다만 한가지, 오래 곁에 남는 책은 천천히 모은 것이라는 것이다. 한꺼번에 뭉텅이로 몰아서 구한 책은 인상에 덜 남는다. 또한 덩치가 크면 애정이 식었을 때 애물단지가 될 확률이 커진다.

가령 마스터 키튼. 1,2권 나올 때 귀찮아서 완결되자 몰아봤다. 후회했다. 더군다나 옴니버스인 탓에 18권이나 되는 비슷비슷한 얘기들을 읽다보니 질려버렸던 것이다; 차라리 한권 한권 나올때마다 봤으면 몇년간 즐거웠을 것을. 즐거움을 하루만에 날려버린 기분이었다.
....반대의 경우로 곁에 있는 애물단지 중 하나는 '천사금렵구'. 장기간에 걸쳐 모은 것이라서 갖고는 있는데(팔리지도 않겠고) 저거 왜 갖고 있나 라는 생각을 꽤 했었다. 지금은 포기했지만.

다만 단편들은 장편보다는 수월하게 갖고 있는다. 장편들처럼 열심히 불타지도 않았지만 부피를 적게 차지하는 탓인지 숱한 정리의 파도를 항상 넘겨오곤 했다. (아토리 케이코의 원본 따위, 단편이 아니었으면 진작에 사라졌을 거다;)

에리훤 5,6호가 아직도 내 곁에 있는 건 저게 얇고(중요!) 단편집인 탓이 크다. 단편은 확실히 밀도가 높기 때문에, 마음에 들 경우 그 단편은 전페이지가 다 마음에 들게 되고, 그렇게 해서 하나라도 마음에 들면 그 책은 웬만한 경우-나머지가 모조리 꽝이 아니라면 계속 갖고 있게 된다. (...나머지가 정말 다 꽝이면 처분할 수도 있다. 가령 바나나농장 만화회지가 바로 그 경계선상에서 간당간당하는 놈;)
또한 5,6호가 최초로 본 저 작가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래도 다 비슷비슷한 작품들이라면 최초로 본 것이 제일 인상에 남지 않겠는가. 오리의 각인효과랄가.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에리훤 24호 '설의 낮과 밤'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무난무난은 한데.... 음.)

'정말 소장본'이란 인생에 몇권 없다고 본다. 나이따라 와닿는 의미도 달라지니까. 그 때 읽으나 지금 읽으나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면 그 삶도 좀 한숨나지 않겠는가.
10살 때 눈물났던 그 책을 30살 때도 눈물짓는다면, 그건 성장을 안 했거나 아니면 옛날에 눈물나던 추억 때문이거나, 정말 드물게 지금도 감동적이거나. 하지만 진짜 드물게겠지. 자신의 근본적인 핵심취향을 건드리는 책이어야 한다는 얘기니까. 남이 쓴 것에서 그 정도의 싱크로율을 찾는다는 건 정말 어려울걸...
계속 새책 나오고 나도 계속 바뀌고. 세상도 계속 변하고.

내 경우엔 굳이 가르자면 이성과 감성면을 동시에 충족시킬 것.
(..어쩌면 이성이란 허영심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기생수'는 이성을 충족시켰지만 결국 팔았다.
'브론즈'는 감성을 충족시켰지만 역시 팔았다.

버닝은 주로 감성 충족쪽에서 일어나지만, 식을 경우 속수무책이다.
아니, 사실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충족시켰다 해도 식는 건 식는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

권수가 많으면 더더욱 애매하다. 가령 드래곤 라자. 통독만 20번은 더했겠지만... 지금? 안 읽어; 작가가 계속 새책 쓰는데다 계속 발전하는걸. 권수도 많아. 이영도 책 집에 너무 많아; 폴랩 소장본 빼고 다 버릴까 라는 생각도 실은 했었다; 단지 아직 책장에 여유가 있어서 남아났지만. (장편소설들은 이게 문제라니까;)

책은 이게 문제다. '좋아했던' 기억 때문에 비싼 서울 땅값(평당 1천만원)을 사장시킨다니까;;

by 샐리 | 2004/04/10 23:15 | 책, 영화, 드라마 등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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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라하 at 2004/04/11 01:07
(아토리 케이코의 원본 따위, 단편이 아니었으면 진작에 사라졌을 거다;)

......심금을 울리는군요; 토시하나 안다르고 제 마음입니다;
Commented by 샐리 at 2004/04/11 11:45
그치? -_-;
그 외에도 단편이라서 갖고 있는 러버스 키스, 길상천녀. 정작 바나나피쉬는 한번 보고 땡이었다....
Commented by 라하 at 2004/04/11 12:43
하지만 요시다 아케미는 네임밸류라도 있죠; 사포 동인시절 좋아했던 시이 히로네 단편집들은 처치곤란입니다; (게다가 번역판도 나왔다죠 -_-;) 팔리지도 않아요 -_-; 마토 사나미 초기작들도 마찬가지; 마토 사나미와 코이데 미에코의 합동지를 나오노 보라 덕분에 팔아먹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세상일은 정말 모르겠어요;
Commented by 샐리 at 2004/04/11 12:58
...토닥토닥. (위로주를 건넨다.) 팔 때 놓친 책들은...(먼눈).
그림 예쁘다고 샀던 게임동인지들은 진짜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니까;;

그래도 러버스 키스랑 길상천녀는 식은 건 아니고 애초부터 뭉근해서 지금도 뭉근한 상태... 하지만 역시 단편 아니었으면 안 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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