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1월 20일
여성관 유감.
"너무 재밌다...그런데 레닌이 누구야? 주인공은 알렉스잖아." <굿바이 레닌>을 보고 나온 20대 초반 여성 관객의 멘트다. 지난해 FILM2.0에 실린 '말말말' 중 으뜸이다. (후략)"
......나는 이 기사 속 여성의 말을 여러번 본 것 같다. 뭐, 노땅들에게 컬처 쇼크적인 발언인 건 분명하다. 그건 인정한다.
하지만 왜, 거기에는 꼭 '여성'이라는 말이 들어가야 하는가?
만약 저 발언을 남성 관객이 했다면 아마 '20대 초반 한 관객의 멘트다' 라고만 표기되지 않았을까. 근거없는 추측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런저런 신문과 잡지, 이름하야 언론 매체들을 쭉 읽다보면 남자들의 망신살은 '사람'으로 표기되고 여자들의 망신살은 꼭 '여자'로 표기된다. 여자는 '여자 사람', 즉 '사람' 속에 그냥 포함되기엔 애매한 개념인 것이다. (하기사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는 '근로자'와 '근로여성'이 구분되어 표기되어 있다. '근로 남성'이라는 단어는 하나도 없다.)
아직도 "처가 혼인 중에 잉태한 자는 부의 자로 추정한다" 라는 - 이 문구 중에는 정작 애낳는 '모'는 빠져있다 - 전근대적 법률이 근간을 이루는 대(大) 한국 사회에서 나의 푸념은 "짜증나는 페미니스트의 히스테리" 정도로나 받아들여지는 게 보통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른바 문화계, 정확히는 영화계는 보통의 한국 사회보다는 조금 진보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저 기사의 '여성' 지칭은 배신이다. (...아니, 어쩌면 혼자 착각했던 건지도 모른다. H나 하얀 방 따위의 낙태 여성 협박용 영화도 예사로 제작하는 게 한국 영화판이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 발언은 엄연히 20대 "여성"이 한 말이 맞지 않느냐고 항변하신다면, 물론 맞다. 나는 기준을 "남성"과 공평하게 들이대라고 말하는 것이다. 게다가 한가지 잊고 있는 게 아닌가? 골 빈 20대 여성은 겉멋으로라도 영화관 간다. 그래서 기자의 눈에 띄어 씹힌다. 골 빈 20대 남성은 아예 영화관 기웃 안 한다. 그래서 기자의 눈에 띄지 않는다. 어느 쪽이 고마운가?
꼭 예전의 출판계 논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들은 주 고객층인 2,30대 여성들이 가벼운 에세이류를 사서 출판계의 질적 저하를 가져온다고 거품을 뿜었다. 하지만 왜 그들이 주고객으로 부상했는지에 대한 고찰은 별로 보지 못했다. 그건 바로 그 잘나신 남자들이 책을 안 사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허영심 때문이건간에 골이 텅 비어도 책 사는데, 남자들은 (좀더 주제파악을 잘 하시는 탓인지) 골 텅 비면 책 안 산다. 아니, 골 차 있어도 책 안 산다.
하지만 어느 누구 말마따나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아예 얼쩡거리지 않는 자들은 언급되지 않고 그나마 열심히 기웃거리는 초짜들이 경멸당한다.
다시 묻는다. 왜 "여자"인가? 저 기사는 "한 20대 초반 관객의 멘트이다"라고만 소개해도 족했을 이야기다. 요새 20대 초반 남성이라고 다들 레닌에 대해 빠삭할 거라고 생각되진 않으니, 저 기사의 핵심은 성별보다는 세대차다. 그렇다면 '한 20대 관객'이라고만 써도 족했다. 그런데 왜?
과연 저 기사를 쓴 사람은 글을 쓰면서 "그래, 요새 20대 여.성.들 다 골 비었다니까"라며 스스로의 편견을 재확인하고 오만과 우월감을 충족시키지 않았다고 자신하는가? 어쩌다 그런 거라고? 왜 내가 본 이 기사 관련 모든 글이 하나도 빠짐없이 "여자"라는 설명을 넣었는데?
하긴, 남고생은 '고교생'이고 여고생은 '여고생'이다. 남고생의 추억은 '고교 시절'이고 여고생의 추억은 '여고 시절'이다. '근로자'와 '근로여성'만 다르게 지칭되는 게 아니다. 남자의 실수는 '그 남자 개인의 바보짓'으로 한정되지만 여자의 실수는 '여성 전체의 수준 확인'으로 확대재생산된다.
그러고 보니 옛날 얘기가 생각난다.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예술계 고등학교에서 선생님들은 남자애들을 우대했다. "여자들은 시집이나 가지만 남자들은 예술로 생계한다."
전후가 뒤바뀌었다. 그런 여자애들을 다잡아 인도하는 게 선생 본연의 임무이며, 또한 그 97%의 여자들 중 전업예술가가 되는 비율이 아무리 적어도 숫자로 따지면 3%의 남자들 중 전업예술가가 되는 숫자보다는 많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남자애들이 고시로 샐러리맨으로 기타 각종 샛길로 빠지지 않으리라고 어찌 장담하는가?)
과학고 가면 또 달라진다. 초창기에는 아예 여자애들은 과학자가 못 된다고 입학도 안 시켰던 그네들은, 소수의 여자애들이 들어온 뒤로는 "여자애들의 정서 함양을 위해" "남자애들은 공부할 시간에" "여자애들에게만 화초에 물주라고 시킨다".
남자는 어떤 상황에서든 여자보다 우대받는다. 물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은 진보적이라고 생각했던 영화언론판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걸 확인하는 건 씁쓸한 일이다.
---
이건 덧인데, '이갈리아의 딸들' 번역 후기에 이런 글이 있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사람'이라는 중립적인 말이 있지만 영어는 man이 '사람'과 '남자'를 동시에 대표한다. 그래서 그 '맨'을 뒤집은 말인 '움'을 '사람'으로 번역하면 그 맛이 나지 않아 '움'과 '맨움' 그대로 번역한다."
나는 그 말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말이 그래도 참 괜찮은 언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말이라는 건 정말 운용하기 나름인 것 같다. 한국 남자들은 심지어는 남녀노소를 모두 포괄하는 가치중립적 단어 '사람'조차 '남자'의 전유물로 사용하기 일쑤이니 말이다. 그래서 "일본 여성은 결혼해서 성이 바뀌니 안됐어요"라는 말에 대한 일본 여성의 대답이 그랬던가. "그게 아니라 한국 여성은 결혼해도 그 가문에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뜻 아닌가요."
슬픈 세상이다.
......나는 이 기사 속 여성의 말을 여러번 본 것 같다. 뭐, 노땅들에게 컬처 쇼크적인 발언인 건 분명하다. 그건 인정한다.
하지만 왜, 거기에는 꼭 '여성'이라는 말이 들어가야 하는가?
만약 저 발언을 남성 관객이 했다면 아마 '20대 초반 한 관객의 멘트다' 라고만 표기되지 않았을까. 근거없는 추측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런저런 신문과 잡지, 이름하야 언론 매체들을 쭉 읽다보면 남자들의 망신살은 '사람'으로 표기되고 여자들의 망신살은 꼭 '여자'로 표기된다. 여자는 '여자 사람', 즉 '사람' 속에 그냥 포함되기엔 애매한 개념인 것이다. (하기사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는 '근로자'와 '근로여성'이 구분되어 표기되어 있다. '근로 남성'이라는 단어는 하나도 없다.)
아직도 "처가 혼인 중에 잉태한 자는 부의 자로 추정한다" 라는 - 이 문구 중에는 정작 애낳는 '모'는 빠져있다 - 전근대적 법률이 근간을 이루는 대(大) 한국 사회에서 나의 푸념은 "짜증나는 페미니스트의 히스테리" 정도로나 받아들여지는 게 보통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른바 문화계, 정확히는 영화계는 보통의 한국 사회보다는 조금 진보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저 기사의 '여성' 지칭은 배신이다. (...아니, 어쩌면 혼자 착각했던 건지도 모른다. H나 하얀 방 따위의 낙태 여성 협박용 영화도 예사로 제작하는 게 한국 영화판이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 발언은 엄연히 20대 "여성"이 한 말이 맞지 않느냐고 항변하신다면, 물론 맞다. 나는 기준을 "남성"과 공평하게 들이대라고 말하는 것이다. 게다가 한가지 잊고 있는 게 아닌가? 골 빈 20대 여성은 겉멋으로라도 영화관 간다. 그래서 기자의 눈에 띄어 씹힌다. 골 빈 20대 남성은 아예 영화관 기웃 안 한다. 그래서 기자의 눈에 띄지 않는다. 어느 쪽이 고마운가?
꼭 예전의 출판계 논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들은 주 고객층인 2,30대 여성들이 가벼운 에세이류를 사서 출판계의 질적 저하를 가져온다고 거품을 뿜었다. 하지만 왜 그들이 주고객으로 부상했는지에 대한 고찰은 별로 보지 못했다. 그건 바로 그 잘나신 남자들이 책을 안 사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허영심 때문이건간에 골이 텅 비어도 책 사는데, 남자들은 (좀더 주제파악을 잘 하시는 탓인지) 골 텅 비면 책 안 산다. 아니, 골 차 있어도 책 안 산다.
하지만 어느 누구 말마따나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아예 얼쩡거리지 않는 자들은 언급되지 않고 그나마 열심히 기웃거리는 초짜들이 경멸당한다.
다시 묻는다. 왜 "여자"인가? 저 기사는 "한 20대 초반 관객의 멘트이다"라고만 소개해도 족했을 이야기다. 요새 20대 초반 남성이라고 다들 레닌에 대해 빠삭할 거라고 생각되진 않으니, 저 기사의 핵심은 성별보다는 세대차다. 그렇다면 '한 20대 관객'이라고만 써도 족했다. 그런데 왜?
과연 저 기사를 쓴 사람은 글을 쓰면서 "그래, 요새 20대 여.성.들 다 골 비었다니까"라며 스스로의 편견을 재확인하고 오만과 우월감을 충족시키지 않았다고 자신하는가? 어쩌다 그런 거라고? 왜 내가 본 이 기사 관련 모든 글이 하나도 빠짐없이 "여자"라는 설명을 넣었는데?
하긴, 남고생은 '고교생'이고 여고생은 '여고생'이다. 남고생의 추억은 '고교 시절'이고 여고생의 추억은 '여고 시절'이다. '근로자'와 '근로여성'만 다르게 지칭되는 게 아니다. 남자의 실수는 '그 남자 개인의 바보짓'으로 한정되지만 여자의 실수는 '여성 전체의 수준 확인'으로 확대재생산된다.
그러고 보니 옛날 얘기가 생각난다.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예술계 고등학교에서 선생님들은 남자애들을 우대했다. "여자들은 시집이나 가지만 남자들은 예술로 생계한다."
전후가 뒤바뀌었다. 그런 여자애들을 다잡아 인도하는 게 선생 본연의 임무이며, 또한 그 97%의 여자들 중 전업예술가가 되는 비율이 아무리 적어도 숫자로 따지면 3%의 남자들 중 전업예술가가 되는 숫자보다는 많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남자애들이 고시로 샐러리맨으로 기타 각종 샛길로 빠지지 않으리라고 어찌 장담하는가?)
과학고 가면 또 달라진다. 초창기에는 아예 여자애들은 과학자가 못 된다고 입학도 안 시켰던 그네들은, 소수의 여자애들이 들어온 뒤로는 "여자애들의 정서 함양을 위해" "남자애들은 공부할 시간에" "여자애들에게만 화초에 물주라고 시킨다".
남자는 어떤 상황에서든 여자보다 우대받는다. 물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은 진보적이라고 생각했던 영화언론판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걸 확인하는 건 씁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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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덧인데, '이갈리아의 딸들' 번역 후기에 이런 글이 있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사람'이라는 중립적인 말이 있지만 영어는 man이 '사람'과 '남자'를 동시에 대표한다. 그래서 그 '맨'을 뒤집은 말인 '움'을 '사람'으로 번역하면 그 맛이 나지 않아 '움'과 '맨움' 그대로 번역한다."
나는 그 말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말이 그래도 참 괜찮은 언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말이라는 건 정말 운용하기 나름인 것 같다. 한국 남자들은 심지어는 남녀노소를 모두 포괄하는 가치중립적 단어 '사람'조차 '남자'의 전유물로 사용하기 일쑤이니 말이다. 그래서 "일본 여성은 결혼해서 성이 바뀌니 안됐어요"라는 말에 대한 일본 여성의 대답이 그랬던가. "그게 아니라 한국 여성은 결혼해도 그 가문에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뜻 아닌가요."
슬픈 세상이다.
# by | 2004/01/20 15:37 | 여자로 산다는 것 | 트랙백(1) | 덧글(3)




제목 : '그/녀의 문제'
여성관 유감. * 샐리님 블로그에서 트랙백합니다. 샐리님의 글과는 약간 미묘하게 어긋나긴 했지만, '우리말', 제가 어렸을 때부터 배워온 우리 말이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