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표류기 - 
허지웅 지음/수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내가 '허지웅'이라는 이름을 기억한 건 필름 2.0에서였다. 기사가 재미있어서 기자를 찾아보면 '허지웅'이라고 적혀있는 경우가 몇번 반복되면서 그 다음에는 가판대에서 훑어볼 때 기사 쓴 사람의 이름을 먼저 찾아보기도 했었다. 덧붙이자면, 프리미어의 '신기주' 기자도 그렇게 챙겨보는 기자 중 한명이다....지금은 필름 2.0도 프리미어도 망했지만. (쩝)
그러다 블로그를 알게 된 건 아마 <디워 광풍>이라는 글 때문이었던 듯 하다. 한 포스트에 리플이 2천개가 붙을 수 있구나 하고 놀라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건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ㄱ-; 그리고, 그런 집단폭격을 맞고서도 굿굿하게 마이웨이를 걷는 모습에 감탄했던 기억이. 그리고 아마 <고시원으로부터 온 편지>였던 것 같다. 그 글을 읽고, 확실하게 링크 추가를 눌렀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마이밸리에 새 글이 갱신되면 찾아가고 있다.
서두를 길게 쓴 것은, 이 책을 어떻게 소개를 해야 하나 하고 고민했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에 책을 받아들고는 좀 당황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렛츠리뷰를 신청하고 서점에 갔다가 이 책이 다른 책과 나란히 가판대에 놓인 것을 보고 당황했었다. 왜냐면. 표지가........
....옙. 구렸어요 =_=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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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책을 받아도 좋은 소리를 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 취소할까 하다가, 아냐, 그래도, 책은 껍질도 중요하지만(아무렴 중요하지!) 내용도 중요하잖아... 게다가 이거 렛츠리뷰 목록에 올려달라고 이글루스에 건의한 게 나였는데 책임을 져야 하잖아...
하지만, 책을 받아들어서 찬찬히 훑어봐도 역시 난감하다.

그리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음... 이쪽도 좀. 70페이지의 가스계량기 사진은 솔직히 경이롭다. 다시 찍기 힘든 광경도 아닌데 좀 새로 찍지 그랬나요;;; 72dpi픽셀 사진을 늘린 듯한 도트가 전면에 우르르르르르;;;
아니 뭐 그래, 사진집이 아니니까, 의도만 알아볼 수 있으면 된다 치자.
글의 배치는 어떤가요.
그러니까 말이지. 그러니까 말이지. 217페이지의 <진보 간지>. 나는 ozzyz.egloos.com 을 꾸준히 지켜본 구독자다. 그래서, 저 선언이 왜 나왔는지 그 전후맥락을 알고 있다. 그런데. 글쎄다. 그런 나였지만, 읽다가 갑자기 저게 저 자리에서 튀어나왔을 땐 당황했었다. 엥. 뭐야. 앞뒤에 설명이 없이 이것만 덜렁. 이거, 블로그 구독자가 아닌 사람이 그 앞의 <광장에 대중문화가 사라졌다>와 <장원급제 오바마 도령> 사이에 이 '선언'글이 왜 들어갔는지 알 수 있을까? 그 글이 속한 챕터가 전체적으로 다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러이러하게 해석될 수 있다>라는 설명·분석식 글이었기에 더 그렇다. 챕터 바뀌는 자리에 들어갔던 <노골리즘 선언 1,2>처럼 이것도 챕터가 바뀔 때 막간극처럼 들어갔으면 훨씬 더 잘 살 수 있었을 것을.
그 외에도 편집에서 문제가 느껴지는 부분은 꽤 여러 곳에서 눈에 띈다. 글의 길이가 좀 애매하달까. 아주 긴 글들, 심층분석이라 할 수 있는 글들도 있지만 법정스님 경구처럼 짧은 한페이지 글도 있고, 이도저도 아닌 두페이지짜리 글도 있다. 주로 이 두페이지짜리 글들이 좀 어중간했다. 모니터로 읽을 땐 재미있지만 활자로 읽으려니 좀 얕고, 그렇다고 짤막하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아포리즘이라고 보기엔 너무 길다. 그런데 이 어중간한 길이의 글들이 연달아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 두페이지 글과 한페이지 글이 거의 연달아 계속 이어지는 중간부분은, 솔직히 산만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재미있는 일러스트라도 넣어서 빈자리를 채워주면 좀더 볼만했을텐데. 일러스트레이터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표지와 큰챕터 바뀔 때 일러스트가 들어간다), 애매애매. ......긴 글이 모자랐나?;
...그렇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여러 다른 미덕도 있다. 그리고 그 미덕이 더 크다는 점에서, 편집이라던가 이런저런 미흡한 점들은 "그래, 뭐, 첫 책이니까" 하며 덮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두 번째 책이 나올 땐 이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ㄱ-)
사실, 전반적으로 책 구성이 따로논다. 총 세 챕터로 되어있는 이 책은, 전반부의 인생역정, 중반부의 사회비판, 후반부의 영화비평으로 나뉜다. 그 세가지는 솔직히 그다지 유기적인 결합이 있는 주제들이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디워를 둘러싼 풍경 같은 건 영화비평과 사회비판이 동시에 될 수 있겠지만 그건 좀 예외적인 경우고, 보통은 그런 건 주제마다 따로 내지 이렇게 한데 뭉뚱그려서 내지는 않지 않나?
그런데 묘하게도, 아니 뭐 좀 산만하긴 한데, 따로놀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이 주제들이 따로논다는 인상은 받기 어려웠다. 느슨하긴 하지만, 그 전체를 관통해서 이 느슨한 조각들을 하나로 묶는 큰 틀이 있었다. 그게 뭘까를 곰곰히 고민하다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그것은 <필터>였다.
"허지웅"이라는 이름의 <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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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글은 저자라는 필터를 통해서 나오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런 일반적인 저자 개념과는 좀 다르다. 예를 들어보자.
1. 우석훈의 <88만원 세대>라는 책이 있다. 우석훈이라는 사람이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축적한 머릿속 지식을 우석훈의 시각으로 풀어낸 거니까 우석훈이라는 필터에서 나온 책이긴 하다. 그런데, 후대에 이 책이 저자미상으로 전해진다고 생각해보자. 그 책에 의미가 없어질까? 그렇지는 않을 거다. 이런 책은 대상이 있고 화자가 보이지 않는다. 저 <88만원 세대>라는 책은, 저자가 낳기는 했지만 저자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2. 홍정욱의 <7막7장>이라는 책이 있다. 홍정욱이라는 사람이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축적한 경험담을 홍정욱의 시각(주로 자화자찬;)으로 풀어낸 거니까 홍정욱이라는 필터에서 나온 책이긴 하다. 그런데 이 책은 화자 본인의 이야기만이 있을 뿐, 그를 낳고 기른 8할의 바람은 그야말로 배경으로 존재한다. 그 세계는 홍정욱이 없으면 의미없는 세계다. 눈꺼풀을 감으면 세상이 사라지는 것처럼.
허지웅의 책은 이 점에서 독특하다. 이것은 <대한민국을 표류한 허지웅의 경험기> 즉 허지웅이라는 화자가 보이면서, 동시에 <허지웅이 표류하면서 본 대한민국의 초상> 즉 허지웅이 가리키는 대상이 보인다. 대한민국이라는 모래더미가 쏟아져서 허지웅이라는 체를 만들고, 다시 허지웅은 그 체를 가지고 대한민국을 조망한다. 일방향이 아니라 쌍방향이다. 그것은 상호교류다. 어느 한 요소만으로는 온전할 수 없다. 허지웅이 없어도 세상은 돌아가겠지만, 허지웅이라는 필터를 통해서 본 세상은 다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독특한 것이다.
이런 점은 어쩌면 '스노우캣'과 통한다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스노우캣 인 파리> <스노우캣 인 뉴욕> 등 일련의 스노우캣 '세계 표류기'는, 스노우캣'만' 있어도 불성립하고 스노우캣이 '없어도' 불성립한다. 그것은 '스노우캣'이 본 '세상'이기에 의미를 가진다.
물론 모든 '인생 표류기'는 화자의 필터를 통해서 본 세상의 이야기이며 화자와 세상의 쌍방교류이기는 하다. 하지만, 모든 이의 '필터'가 다 대중의 관심과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점에서 우석훈이 말한 <시대의 아이콘>이라는 표현은,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때에는 매우 낯뜨거웠(;;)으나, 그것이 단순한 찬사가 아니라 그가 가진 독특한 위치에 대한 비유라고 보았을 때는 수긍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2009년 대한민국을 여러가지 아이콘으로 만들어서 데스크탑 바탕화면에 깔았을 때, '허지웅'이라는 이름의 '아이콘'이 그 자리에 낄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아이콘을 더블클릭하면, 필터가 뜬다. 허지웅이라는 필터가. 그 필터를 통해서 본 세상에 다 동의할 수 있는 건 아니라 할지라도, 그 필터가 가진 독특한 색깔과 깊이만으로도 충분히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그리고 그 필터가 계속해서 변화 중이라는 것은 좀더 흥미롭다. 그것은 세상과 필터의 실시간 상호갱신이다. 대한민국이라는 환경이 허지웅이라는 필터를 만들고 허지웅은 그 필터로 대한민국을 조망하다가, 그렇게 얻은 결과물이 필터에 또 영향을 주어 '노골리즘 선언'이니 '진보 간지' 선언 등을 하기에 이른다. 이 책이 박민규 등 비슷한 소재의 '소설'과 차별되는 지점은 아마 여기일 것이다. 이것은 소설처럼 책한권 끝나면 주인공의 성장도 끝나는 완결된 세계가 아니라 지금도 실시간으로 계속되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실제의 인물이 자신을 드러내는 논픽션이기에 생겨나는 매력이리라.
과연 그 끝은 어떻게 될 것인가? 뭐, 블로그를 계속 지켜보면 알 수 있겠고, 그 중에서 좋은 글들이 엄선되어 <표류기 2,3>이나 <정착기> <난파기> <월동기> 등등등이 나올 수도 있겠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지만, 그 나아가는 길을 지켜보는 것의 흥미진진함. 그것이 이 첫책이 아직 미흡한 부분이 여러 곳에서 보임에도 불구하고 두번째 책을 기대하게 하는 원동력이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고시원으로부터 온 편지>와 저자 본인도 최고의 글로 꼽았던 <록키 발보아 리뷰 - 록키는 어떻게 스탤론을 구원했나> 만으로도 활자화된 책을 소장하는 의미는 충분하다고 본다. 시의성을 좀 타기는 하지만 지금 봐도 여전히 좋은 최민수 취재 기사 같은 것도 그렇고.
김어준의 표현을 빌어서 한마디 해보자면, 앞으로도, 졸라,
건투를 빈다. ㅇ_ㅇ)/





덧글
Riff 2009/03/23 14:45 # 답글
표지가 구리다고 생각한 건 저만이 아니군요OTL 표지 디자인이 너무 안이해요-ㅂ-;(사비로 소량만 찍어낸 책 같은 아마추어리즘이 느껴지는 디자인;) 아직 제대로 읽진 못하고 서점에서 잠깐 들춰보기만 했지만 내부도 좀 애매하더라고요. 그래도 조만간 제대로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샐리 2009/03/23 15:18 #
그쵸? 구려요. 요즘은 아마추어 소설 야오이 책도 저것보단 디자인이 세련되다구요 ㄱ-; 게다가 편집도... 제가 이외수의 <하악하악>을 보며 이런 종이낭비가 있나! 하고 일갈했었는데, 이 <대한민국 표류기>를 보고 나니 <하악하악>이 책 성격에 맞게 편집을 잘 했구나 라고 생각을 바꾸게 됐다는...;; 그거랑 에잇 쓸데없이 일러스트를 잔뜩 집어넣어서 책값을 인상했다 갸오오~~ 했던 김어준의 <건투를 빈다>도, 그거 쓸데없는 짓이 아니었구나 이것에 비하니 편집 참 훌륭하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orz그런데 그게 편집부 잘못이지 저자의 잘못은 아니라서... 그것때문에 비추를 때리긴 좀 애매하더라고요 -_;;; 어쨌거나 록키 발보아 리뷰 같은 건 몇번을 다시 읽어도 좋으니까.... 그런데 저도 이거 돈주고 사라고 했으면 어땠을지 좀 고민스럽긴 해요;;; 책값이나 싸면 모르겠는데 어중간해서리...=_=;;; 뭐, 그래도 저처럼 책값 한푼에 부들부들 안 떨고, 책값 안 아끼는 분이라면 사서 놓고 읽을만한 것 같습니다.
페리 2009/03/23 15:12 # 답글
확실히 손이가는 표지는 아니죠...;ㅁ; 근데 샐리님 글을 읽어보고 나니 내용이 끌리네요.저도 허지웅님 블로그는 종종 찾아가는데, 표현도 그렇고 의견이 다른점도 있지만 그래도 끌리는 글들이 꽤 많았거든요 ㅎㅎ
렛츠리뷰 당첨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D
샐리 2009/03/23 15:21 #
제가 렛츠리뷰 당첨됐다고 따로 글을 쓴 적도 없는 걸요 ^^;; 저야말로 페리님이 따로 포스팅하신 것에 축하리플을 안 달았네요. 뒤늦었지만 페리님도 축하드립니다 >_<내용은... 근데 그거 거의 다 블로그에 이미 있는 내용을 재수록한 거라서요^^;; 활자화해서 좋았던 글(주로 긴 글들)도 있고, 활자화하니까 애매해진 글들도 있어서 일괄추천하긴 좀 그렇긴 합니다. (그런데 이건 저자의 잘못이라기보단 편집부 잘못이라서...;;) 그래도 오지님 블로그를 평소 즐겨 찾으셨다면 추천할 만 합니다. 역시 영화기자여서 그런지 영화쪽 리뷰들이 좋더라고요.
리체 2009/03/23 15:53 # 답글
대부분 동감이에요. 아, 안 읽은 사람도 공감할 수 있는 이 멋진 리뷰라니.ㅎㅎ글은 좋은데 표지가 마음에 안 들 경우, 특히나 온라인에서는 선택할 여지가 현저하게 줄어들죠. 그게 저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군요. 뭔가 상징성 있는 표지라는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아니 꼭 저렇게 직설적으로 뽑았어야 했나, 란 느낌이랄까요. 어떤 면에서는 뭔가 진보적인 표지인가?-_- 싶기도;; 암튼 책을 내용 보고 사기도 어려운 온라인에서 표지 보고 혹하는 경우도 절반 이상은 된다고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근데 속 편집도 썩 보기 좋은 것도 아닌 모양이네요. 암튼간에... 잘 읽고 갑니다. 샐리님 덕에 어쩌면 사볼지도 모르는..;
이젤론 2009/03/23 16:24 # 답글
김어준급 필터링인가보네요. 오오 +_+)+
어릿광대 2009/03/24 02:47 # 답글
일부러 표지를 구리게 만든 작전.
파안 2009/09/25 02:47 # 답글
와- 정말 멋진 리뷰예요...반성합니다..에고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