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8월 10일
http://haime.egloos.com/1389635
된장녀 현상과 문화 지체
자, 이제 이 징한 논란이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니, 한번 정리해볼 때가 되었다.
7월 말 8월 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된장녀 논란은, 사실 모두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듯이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어떻게 보면 논란이 되는 것 자체가 우습다. 하지만 논란이 되었다. 왜 그랬을까?
된장녀의 개념 속에 일부 포함된 "남자를 뜯어먹는 년"이라는 개념은 굳이 된장녀 아니라 '빈대녀'나 '꽃뱀' 등 보다 명확하게 나타낼 수 있는 말이 있다. 그럼에도 굳이 '된장녀'라는 말이 등장해서 스타벅스와 엘라스틴을 공격하는 것은, 단지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된장녀란 빈대녀이기 때문이다"는 아니다. 이미 빈대녀라는 말은 있었고, 그 말은 아무에게도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을테니까. (물론 빈대남도 있다!는 반발은 불러오겠지만 적어도 지금처럼이야...;;)
기존에 있는 말이 아닌 된장녀라는 말이 탄생한 것은 그 안에 "서구식 소비지향의 삶을 추구하는 여성들(그들이 남자를 뜯어먹던 말던 상관없이)에 대한 적대감"이라는, 기존에 없던 개념이 포함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감정을 나타내는데 필요해서 생긴 신조어인 것이다.
사실 된장녀 타령에 동조한, 혹은 관망한 모든 남자들이 다 그녀를 따먹고 싶은데 그녀가 안 줘서, 혹은 따먹으려니 돈들어서, 욕한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런 욕망으로 자기 주제를 모르는 놈들도 부지기수이긴 하다.) 분명 말이 안되는 논란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 된장녀라고 지칭된 모호한 개념에 대한 '적대감', 그리고 그걸 씹는 세태에 대한 '통쾌감'을 일말이라도 느끼는 것은, 이를테면 김옥빈처럼 "할인카드 썼더니 ('할인품목'이라는 표시가 그대로 붙어있는 선물을 받은 것 같아서) 분위기 깬다" 라는 생각이 옳지 않다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많은 여성들이 <감정적>으로는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안다고 마음이 다 따라주지는 않는 것이다.
왜 그런 걸까?
기본적으로는 나와 다른 것은 틀리다라고 생각하는 인간의 본능에 있을 것이다.
가격이 문제여서 '된장녀'들이 공격당했던 것은 아니다. 스타벅스 커피값이라고 해봐야 가장 비싼 게 6천원 정도밖에 안 한다. 그런데도 스타벅스 가는 것을 비난했다. 왜 그럴까? 자기가 그걸 안 좋아하기 때문이다. 스타벅스 좋아하는 남자들이 스타벅스 다니는 여자들을 욕할 거라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자기가 가치를 안 두는 걸 남이 하니까 그걸 우습게 여긴 것이다.
내 경험을 고백하자면, 나는 네일아트라는 게 떴을 때, 내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그걸 하는 다른 여성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그래선 안된다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여전히 "저 돈 아까운 짓을 왜 할까?" 라는 생각이, 가슴 밑바닥에 깔려있지 않다고는 말 못하겠다. 왜냐고? 내가 네일아트를 안 하니까. 잠깐 예뻐보이자고 며칠 지나지 않아 사라지는 그 짧은 효용성에 1만원 - 고작 1만원! - 이라도 투자하는 것은 나는 낭비로 생각하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
자 여기서 생각해보자. <내가 하면 낭비>라고 생각하면서 <남이 하면 투자> 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물론 머리로야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진심의 '완전한 동의'는 불가능하다. 동의하면 나도 네일아트 했겠지 -_;; 그러므로 여기서 다시 이성이 필요한 거다.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자>라는 공자님 말씀이 말이다.
헌데, 이 단계까지 오려면 생각은 몇단계를 거쳐야 한다. 네일아트라는 게 맨 처음에 TV에 나왔을 때 느꼈던 맨 첫 감정인 "저런 거 왜 해?" 가 "할 수도 있지" 까지 바뀌려면 말이다. 일부러 의식하고 하지 않는한은 전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쟤네들 웃긴다"라는, 더 나쁜 반응으로 가버리기 쉽다.
하물며, 남자들은 '여자가 자기를 위해 돈 쓰는 것'을 '사치'라고 생각하도록 교육받고 자랐다. (실은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가정상(실제로 가정들이 그러하냐는 상관없다)은 "남자가 돈을 벌고 여자가 그 돈으로 살림을 꾸리는" 것이었으니까. 자기가 번 돈도 아닌데 자기를 위해 비싼 백을 사면, 여자가 쇼핑 중독에 빠졌다 소리가 나온다 --; 그러다보니 어느새 "여자가 자신을 위해 생활필수품 이상의 것에 돈들이면 사치다" 라는 인식이 박혀버렸다. (비슷한 예로, 자손양육의 효율성을 기리기 위해 남녀분담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자손양육의 필요성이 없는 경우에도 남녀분담을 따지게 된 세태를 생각해보면 된다. 최초의 목적은 사라지고 습관만 남는 현상이다.)
일찍이 SLR 동호회에서 남편이 디카 렌즈 기변에 수백만원을 쓰는 동안 여자는 낡은 냉장고 대신 양문형 냉장고를 사고 싶었지만 말도 못하고 있다가, 어느날 남편이 PDP TV 산다고 같이 쇼핑 나갔을 때 저도 모르게 냉장고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못박혀 있는 걸 남편이 보고는 깨달은 바 있어 렌즈 판 돈으로 냉장고를 사주는 실화가 올라온 적이 있었다. (관련기사) 사실, 그녀라고 "어휴, 자기 위해 쓰는 돈 조금만 쪼개서 냉장고 하나 사주지" 라는 생각 안 들었을까? 그런데 왜 말을 못했을까? 자기가 돈을 안 버니까. 그리고 낡긴 했어도 냉장고는 아직 돌아가니까. 말을 하면 "그 냉장고 아직 쓸만한데 왜 바꿔?" 라고 말을 들을테니까. 남편은 굳이 새 냉장고를 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까.
─ 치사한가? 치사하지. 치사하고 말고. 한번 당해보라. 드럽다 -_- (남자들도 부모님에게 당해본 경험 많을 것이다. "아빠, 만화책 사게 돈 좀" "그런데 쓸 돈 없어!") 그래서 여성들도 돈을 벌기 시작한 요 몇십년 새, 여성들은 드디어 자기가 돈벌어 자신을 위해 돈을 쓰기 시작했다. 네일아트를 하고, 예쁜 옷을 사고, 밥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고, 그러다 정도가 지나쳐서 카드빚 파산하는 경우도 있지만 더 많은 여자들은 자기가 버는 한도 안에서 밥을 굶고 옷을 사거나 DVD를 사거나 뮤지컬을 보러 간다.
헌데 이게 낯설다. 위에서 나는 "여자들이 자기를 위해서 돈 쓰는 것 자체가 칭찬받지 못할 행동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관습에 대해 짚은 바 있다. "저 여자들은 자기가 돈을 벌어서 쓰니 사치가 아니다" 라는 고차원(!)적인 생각보다는, "저년들은 쓸데도 없는 데 돈 쓴다"가 더 우선적으로 드는 게 여태 뿌리내린 고정관념이다. 그녀들이 돈을 벌거나 말거나는 그 다음 문제다. 된장녀라는 말이 맨 처음 물위로 떠올랐을 때 모두 "스타벅스 가는 된장녀!" 라고 외쳤던 걸 떠올려보라. "그 스타벅스 가는 돈을 우리가 내니까 된장녀"라고 한 것도, "자기 돈으로 스타벅스 가는 여자는 된장녀 아니다"라고 구분해서 욕한 거 아니다. 무조건 "스타벅스 가서 커피 처마시는 된장년!"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최종 행위"를 욕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내 눈에는 가치없어 보이는 것에 돈쓰는 행위에 대한 경멸" + "여자들이 자기 자신에게 돈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합쳐져서, 짜증으로 발전한 것이다. 여자들이야 억눌려있던 욕망의 발현이니 "아 넌 여행? 난 구두"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남자들은 "저 여자들이 갑자기 왜 저래?" 하고 어안이벙벙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 관심사라는 것이 외제 수입문물이니, 욕할 명분도 딱 좋다.
─ 그래서 폭발했다. 한국 스타벅스의 가격이 유독 비싸다는 보도는, 그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스타벅스에 가는 여자들에 대한 비난으로 돌변했고, 순식간에 된장녀 탄핵 구호가 전국에 들끓었다. 마치 그 옛날 산업혁명기 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울분을 기계를 때려부수며 풀었던 러다이트 운동처럼.
그게 작금의 된장녀 사태다. 된장녀의 개념이 그토록 아무 거나 다 끌어모은 온갖 오사리잡탕의 총집합이었던 것은, 그 분노의 대상이 그만큼 광범위했기 때문인 것이다. 무차별적인 증오, 짜증, 적개심. 그것은 수십만원짜리 명품이냐 수천원짜리 샴푸냐의 문제가 아니라, 아니, 오히려 수천원짜리 커피였기 때문에 짜증이 더욱 축적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수백만원짜리 명품이야 비난할 명분이 비교적 확실하지 않은가. 그런데 커피는 뭐, 고작 5천원. 사치녀라고 비난하긴 너무 쪼잔하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하나하나가 모여 '여자들이 변해간다' 라는 거대한 흐름의 일부분이 되고 오히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수백만원짜리 명품보다도 더 광범위하게 여자들이 변하고 있다는 상징이 된다. 일시적 일탈이 아니라 상시적 변화라는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닌 수천원짜리 커피와 샴푸가 표적이 된 것은, 오히려 핵심을 예리하게 짚은 직관에서 나온 것이었던 것이다.
...그럼 어쩌냐고?
내버려두면 된다. 이미 시대의 흐름은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쪽으로 바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들 중에서도 "대체 스타벅스 가는 게 무슨 문제냐?" 라며 된장녀라는 말에 코웃음을 치는 사람 - 즉 이탈자가 많이 나왔던 것은, 이것이 여성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사회적인 가치 개념이 바뀌어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러다이트 운동이 산업혁명을 잠깐 주춤거리게했을지는 몰라도 결국 시대의 흐름을 역행시키지는 못했듯이, 일시적인 된장녀 욕설이 여성들을 잠시 움찔하게 할지는 몰라도, 이미 가속화된 흐름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유행어가 탄생하고 사라져가는 인터넷에서, 된장녀 역시 그 수명이 길지는 않지 않을까?
그러니 여자들은, 남이사 된장녀라고 하건말건 상관없이 계속해서 굿굿하게 스타벅스를 가고 엘라스틴을 쓰고 아웃백을 가고, 하던대로 "나는 소중하니까"를 실천하면 되는 거다. 된장녀에 분개하던 남성들은... 같이 "나는 소중하니까"에 동참하면 어떨까? 여자들과 같은 취미를 가지라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방식대로 나아가면 되는 거다.
그게 적어도, 지금처럼 엄한 여자들을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것보다는 건설적이지 않을까. 작금의 세태가 답답하고 짜증난다는 건 알겠지만, 그래봐야 여자들이 멈추지도 않을테니 말이다.
─ 시대를 역행하는 러다이트 운동은 결국 실패하게 마련이다.
※ 한가지 더 추가하자면, 여자들보고 비싼 커피샵 가서 놀지 말라는 것은, 다른 대체 장소를 주지 않는 한 "여자들은 쓸데없이 돈쓰고 수다떨지 말고 집으로 들어가!"라는 말과 다를 게 없다. 여자들끼리 술집에 가서 술먹고 놀면 예쁘게 봐줄거야? 정말? 여자가 담배 피우는 것도 그렇게 눈꼴시어 하면서?
불과 반세기, 아니 사반세기 전만 해도 여자들에겐 집밖에서 마음놓고 놀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스타벅스가 그토록 각광받았던 것은 "우리도 놀 곳이 필요하다"라는 그 욕망에 제대로 부응한 덕분이기도 하다. 나는 스타벅스 커피가 맛이 없지만, 여자들끼리 마음놓고 오래오래 수다떨기에 그만한 장소도 달리 없다.
※ 추천 기사 : 심리학자가 본 '된장녀'열풍 "나와 다르면 용서못해"
7월 말 8월 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된장녀 논란은, 사실 모두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듯이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어떻게 보면 논란이 되는 것 자체가 우습다. 하지만 논란이 되었다. 왜 그랬을까?
된장녀의 개념 속에 일부 포함된 "남자를 뜯어먹는 년"이라는 개념은 굳이 된장녀 아니라 '빈대녀'나 '꽃뱀' 등 보다 명확하게 나타낼 수 있는 말이 있다. 그럼에도 굳이 '된장녀'라는 말이 등장해서 스타벅스와 엘라스틴을 공격하는 것은, 단지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된장녀란 빈대녀이기 때문이다"는 아니다. 이미 빈대녀라는 말은 있었고, 그 말은 아무에게도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을테니까. (물론 빈대남도 있다!는 반발은 불러오겠지만 적어도 지금처럼이야...;;)
기존에 있는 말이 아닌 된장녀라는 말이 탄생한 것은 그 안에 "서구식 소비지향의 삶을 추구하는 여성들(그들이 남자를 뜯어먹던 말던 상관없이)에 대한 적대감"이라는, 기존에 없던 개념이 포함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감정을 나타내는데 필요해서 생긴 신조어인 것이다.
사실 된장녀 타령에 동조한, 혹은 관망한 모든 남자들이 다 그녀를 따먹고 싶은데 그녀가 안 줘서, 혹은 따먹으려니 돈들어서, 욕한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런 욕망으로 자기 주제를 모르는 놈들도 부지기수이긴 하다.) 분명 말이 안되는 논란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 된장녀라고 지칭된 모호한 개념에 대한 '적대감', 그리고 그걸 씹는 세태에 대한 '통쾌감'을 일말이라도 느끼는 것은, 이를테면 김옥빈처럼 "할인카드 썼더니 ('할인품목'이라는 표시가 그대로 붙어있는 선물을 받은 것 같아서) 분위기 깬다" 라는 생각이 옳지 않다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많은 여성들이 <감정적>으로는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안다고 마음이 다 따라주지는 않는 것이다.
왜 그런 걸까?
기본적으로는 나와 다른 것은 틀리다라고 생각하는 인간의 본능에 있을 것이다.
가격이 문제여서 '된장녀'들이 공격당했던 것은 아니다. 스타벅스 커피값이라고 해봐야 가장 비싼 게 6천원 정도밖에 안 한다. 그런데도 스타벅스 가는 것을 비난했다. 왜 그럴까? 자기가 그걸 안 좋아하기 때문이다. 스타벅스 좋아하는 남자들이 스타벅스 다니는 여자들을 욕할 거라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자기가 가치를 안 두는 걸 남이 하니까 그걸 우습게 여긴 것이다.
내 경험을 고백하자면, 나는 네일아트라는 게 떴을 때, 내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그걸 하는 다른 여성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그래선 안된다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여전히 "저 돈 아까운 짓을 왜 할까?" 라는 생각이, 가슴 밑바닥에 깔려있지 않다고는 말 못하겠다. 왜냐고? 내가 네일아트를 안 하니까. 잠깐 예뻐보이자고 며칠 지나지 않아 사라지는 그 짧은 효용성에 1만원 - 고작 1만원! - 이라도 투자하는 것은 나는 낭비로 생각하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
자 여기서 생각해보자. <내가 하면 낭비>라고 생각하면서 <남이 하면 투자> 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물론 머리로야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진심의 '완전한 동의'는 불가능하다. 동의하면 나도 네일아트 했겠지 -_;; 그러므로 여기서 다시 이성이 필요한 거다.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자>라는 공자님 말씀이 말이다.
헌데, 이 단계까지 오려면 생각은 몇단계를 거쳐야 한다. 네일아트라는 게 맨 처음에 TV에 나왔을 때 느꼈던 맨 첫 감정인 "저런 거 왜 해?" 가 "할 수도 있지" 까지 바뀌려면 말이다. 일부러 의식하고 하지 않는한은 전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쟤네들 웃긴다"라는, 더 나쁜 반응으로 가버리기 쉽다.
하물며, 남자들은 '여자가 자기를 위해 돈 쓰는 것'을 '사치'라고 생각하도록 교육받고 자랐다. (실은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가정상(실제로 가정들이 그러하냐는 상관없다)은 "남자가 돈을 벌고 여자가 그 돈으로 살림을 꾸리는" 것이었으니까. 자기가 번 돈도 아닌데 자기를 위해 비싼 백을 사면, 여자가 쇼핑 중독에 빠졌다 소리가 나온다 --; 그러다보니 어느새 "여자가 자신을 위해 생활필수품 이상의 것에 돈들이면 사치다" 라는 인식이 박혀버렸다. (비슷한 예로, 자손양육의 효율성을 기리기 위해 남녀분담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자손양육의 필요성이 없는 경우에도 남녀분담을 따지게 된 세태를 생각해보면 된다. 최초의 목적은 사라지고 습관만 남는 현상이다.)
일찍이 SLR 동호회에서 남편이 디카 렌즈 기변에 수백만원을 쓰는 동안 여자는 낡은 냉장고 대신 양문형 냉장고를 사고 싶었지만 말도 못하고 있다가, 어느날 남편이 PDP TV 산다고 같이 쇼핑 나갔을 때 저도 모르게 냉장고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못박혀 있는 걸 남편이 보고는 깨달은 바 있어 렌즈 판 돈으로 냉장고를 사주는 실화가 올라온 적이 있었다. (관련기사) 사실, 그녀라고 "어휴, 자기 위해 쓰는 돈 조금만 쪼개서 냉장고 하나 사주지" 라는 생각 안 들었을까? 그런데 왜 말을 못했을까? 자기가 돈을 안 버니까. 그리고 낡긴 했어도 냉장고는 아직 돌아가니까. 말을 하면 "그 냉장고 아직 쓸만한데 왜 바꿔?" 라고 말을 들을테니까. 남편은 굳이 새 냉장고를 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까.
─ 치사한가? 치사하지. 치사하고 말고. 한번 당해보라. 드럽다 -_- (남자들도 부모님에게 당해본 경험 많을 것이다. "아빠, 만화책 사게 돈 좀" "그런데 쓸 돈 없어!") 그래서 여성들도 돈을 벌기 시작한 요 몇십년 새, 여성들은 드디어 자기가 돈벌어 자신을 위해 돈을 쓰기 시작했다. 네일아트를 하고, 예쁜 옷을 사고, 밥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고, 그러다 정도가 지나쳐서 카드빚 파산하는 경우도 있지만 더 많은 여자들은 자기가 버는 한도 안에서 밥을 굶고 옷을 사거나 DVD를 사거나 뮤지컬을 보러 간다.
헌데 이게 낯설다. 위에서 나는 "여자들이 자기를 위해서 돈 쓰는 것 자체가 칭찬받지 못할 행동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관습에 대해 짚은 바 있다. "저 여자들은 자기가 돈을 벌어서 쓰니 사치가 아니다" 라는 고차원(!)적인 생각보다는, "저년들은 쓸데도 없는 데 돈 쓴다"가 더 우선적으로 드는 게 여태 뿌리내린 고정관념이다. 그녀들이 돈을 벌거나 말거나는 그 다음 문제다. 된장녀라는 말이 맨 처음 물위로 떠올랐을 때 모두 "스타벅스 가는 된장녀!" 라고 외쳤던 걸 떠올려보라. "그 스타벅스 가는 돈을 우리가 내니까 된장녀"라고 한 것도, "자기 돈으로 스타벅스 가는 여자는 된장녀 아니다"라고 구분해서 욕한 거 아니다. 무조건 "스타벅스 가서 커피 처마시는 된장년!"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최종 행위"를 욕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내 눈에는 가치없어 보이는 것에 돈쓰는 행위에 대한 경멸" + "여자들이 자기 자신에게 돈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합쳐져서, 짜증으로 발전한 것이다. 여자들이야 억눌려있던 욕망의 발현이니 "아 넌 여행? 난 구두"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남자들은 "저 여자들이 갑자기 왜 저래?" 하고 어안이벙벙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 관심사라는 것이 외제 수입문물이니, 욕할 명분도 딱 좋다.
─ 그래서 폭발했다. 한국 스타벅스의 가격이 유독 비싸다는 보도는, 그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스타벅스에 가는 여자들에 대한 비난으로 돌변했고, 순식간에 된장녀 탄핵 구호가 전국에 들끓었다. 마치 그 옛날 산업혁명기 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울분을 기계를 때려부수며 풀었던 러다이트 운동처럼.
그게 작금의 된장녀 사태다. 된장녀의 개념이 그토록 아무 거나 다 끌어모은 온갖 오사리잡탕의 총집합이었던 것은, 그 분노의 대상이 그만큼 광범위했기 때문인 것이다. 무차별적인 증오, 짜증, 적개심. 그것은 수십만원짜리 명품이냐 수천원짜리 샴푸냐의 문제가 아니라, 아니, 오히려 수천원짜리 커피였기 때문에 짜증이 더욱 축적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수백만원짜리 명품이야 비난할 명분이 비교적 확실하지 않은가. 그런데 커피는 뭐, 고작 5천원. 사치녀라고 비난하긴 너무 쪼잔하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하나하나가 모여 '여자들이 변해간다' 라는 거대한 흐름의 일부분이 되고 오히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수백만원짜리 명품보다도 더 광범위하게 여자들이 변하고 있다는 상징이 된다. 일시적 일탈이 아니라 상시적 변화라는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닌 수천원짜리 커피와 샴푸가 표적이 된 것은, 오히려 핵심을 예리하게 짚은 직관에서 나온 것이었던 것이다.
...그럼 어쩌냐고?
내버려두면 된다. 이미 시대의 흐름은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쪽으로 바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들 중에서도 "대체 스타벅스 가는 게 무슨 문제냐?" 라며 된장녀라는 말에 코웃음을 치는 사람 - 즉 이탈자가 많이 나왔던 것은, 이것이 여성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사회적인 가치 개념이 바뀌어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러다이트 운동이 산업혁명을 잠깐 주춤거리게했을지는 몰라도 결국 시대의 흐름을 역행시키지는 못했듯이, 일시적인 된장녀 욕설이 여성들을 잠시 움찔하게 할지는 몰라도, 이미 가속화된 흐름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유행어가 탄생하고 사라져가는 인터넷에서, 된장녀 역시 그 수명이 길지는 않지 않을까?
그러니 여자들은, 남이사 된장녀라고 하건말건 상관없이 계속해서 굿굿하게 스타벅스를 가고 엘라스틴을 쓰고 아웃백을 가고, 하던대로 "나는 소중하니까"를 실천하면 되는 거다. 된장녀에 분개하던 남성들은... 같이 "나는 소중하니까"에 동참하면 어떨까? 여자들과 같은 취미를 가지라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방식대로 나아가면 되는 거다.
그게 적어도, 지금처럼 엄한 여자들을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것보다는 건설적이지 않을까. 작금의 세태가 답답하고 짜증난다는 건 알겠지만, 그래봐야 여자들이 멈추지도 않을테니 말이다.
─ 시대를 역행하는 러다이트 운동은 결국 실패하게 마련이다.
※ 한가지 더 추가하자면, 여자들보고 비싼 커피샵 가서 놀지 말라는 것은, 다른 대체 장소를 주지 않는 한 "여자들은 쓸데없이 돈쓰고 수다떨지 말고 집으로 들어가!"라는 말과 다를 게 없다. 여자들끼리 술집에 가서 술먹고 놀면 예쁘게 봐줄거야? 정말? 여자가 담배 피우는 것도 그렇게 눈꼴시어 하면서?
불과 반세기, 아니 사반세기 전만 해도 여자들에겐 집밖에서 마음놓고 놀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스타벅스가 그토록 각광받았던 것은 "우리도 놀 곳이 필요하다"라는 그 욕망에 제대로 부응한 덕분이기도 하다. 나는 스타벅스 커피가 맛이 없지만, 여자들끼리 마음놓고 오래오래 수다떨기에 그만한 장소도 달리 없다.
※ 추천 기사 : 심리학자가 본 '된장녀'열풍 "나와 다르면 용서못해"

